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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브로드웨이 영웅’ 줄리아니의 추락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19 18:00

수정 2020.11.19 18:00

[fn광장] ‘브로드웨이 영웅’ 줄리아니의 추락
지난달 미국 대선을 2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코미디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페이크(가짜) 인터뷰에 속아 기자 역을 맡은 젊은 여배우와 호텔방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할 뻔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여배우는 인터뷰를 마치고 줄리아니에게 "침실에서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말했고, 줄리아니는 순순히 침실로 이동해 유혹에 빠진 듯한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담겼다. 대선 레이스 내내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에 뒤처져 갈 길이 먼 트럼프 캠프에는 치명타였다. 줄리아니는 바이든의 과거를 캐내서 이슈화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전략의 선봉장이었는데 정작 자신이 트럼프의 재선 가도를 막게 됐다.

현직 대통령의 변호사이자 명망가의 일탈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뉴욕시장을 거쳐간 정치인들은 많지만 그중에서 1994~2001년 동안 재임한 줄리아니 전 시장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는 그해 타임지가 뽑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뉴욕시장 재임 중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뉴욕을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검사 출신 정치인이자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며 마피아를 비롯, 각종 범죄조직들의 돈줄을 끊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악명 높은 뉴욕의 밤거리를 장악한 성매매와 각종 성인 퇴폐쇼를 퇴출시키기도 했다. 당시 브로드웨이 공연계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의 애칭 '루디'는 극장가의 치안 유지와 발전에 공로가 많았던 올바르고 강직한 인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 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전통적으로 연극적인 양식에 노래를 부가시킨 뮤지컬 드라마나 뮤지컬 코미디가 주를 이루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뮤지컬의 다른 한 축은 '벌레스크(Burlesque)'로서 입담이 센 미모의 여배우가 남성 관객들에게 만담을 하고 옷을 하나씩 벗으며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쇼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서 노골적인 성매매까지 제안하는 포르노숍과 스트립쇼 클럽 등이 뉴욕의 극장들이 밀집한 타임스스퀘어 근처에 오랜 기간 공존해왔다. 당연히 범죄조직, 부랑자, 알코올중독자들의 소굴이었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뉴욕 시내는 위험하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의 재임기간 중 음침한 상태로 버려져 있던 낡은 극장가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가족 관객들로 북적이는 브로드웨이로 변모했다. 패밀리 친화적인 엔터테인먼트그룹 디즈니가 브로드웨이에 전용극장을 설립하고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 '아이다' 등을 연달아 개막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줄리아니가 비록 몰래카메라였다고는 하지만 처음 만난 젊은 여성과 침대에서 벌인 행동은 그동안 그가 쌓아온 가족 친화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현재 뉴욕 극장가는 팬데믹으로 인해 올봄부터 내년봄까지 1년 동안 셧다운 상태이다.
당연히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도 발길이 끊겼고 실업자가 된 수많은 공연 인력들이 뉴욕을 빠져나간 상태다. 극장가의 발전을 이끈 신화적인 인물의 추락과 함께 문닫힌 극장가의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겹친 2020년 뉴욕은 극장가가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연 인력들에게 한없는 기다림의 계절이다.
이제 어느 귀인이 나타나서 전염병에 쓰러져버린 극장가를 다시 살려줄 것인가 기대를 해본다.

조용신 연극 뮤지컬 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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