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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히타치 "IT기업으로 불러달라"...'환골탈태 10년' [도쿄리포트]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21 10:44

수정 2020.11.21 11:05

핵심 계열사 히타치 금속, 히타치 건기 등 매각
2008년 8조원대 대규모 적자 기록 후 
10년간 구조조정, 계열사 사업 재편 
美하청기업 신세 전락 우려...IT분야 승부수 
그래픽=박희진 기자
그래픽=박희진 기자

【도쿄=조은효 특파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 때 생존의 기로에 섰던 히타치제작소가 10년에 걸친 사업구조 재편 끝에 마지막 9분 능선에 섰다.

110년 역사의 히타치는 "더 이상 전통 제조업은 안하겠다"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등 4차 산업 혁명 분야를 그룹의 핵심 축으로 삼고, 그간 중공업, 발전 등 전통 제조업 분야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IT과 관련 없으면 내다판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히타치는 핵심 계열사인 히타치 금속 매각을 위한 입찰 절차에 돌입했다. 현재 베인캐피탈, KKR 등 여러 미국의 대형 투자 펀드가 입질하고 있다. 히타치 금속은 시가 총액 6000억엔(약 6조6000억원)의 인수합병(M&A)시장의 대어다. 히타치금속이 자동차 및 항공기용 특수강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IT분야와 별다른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히타치 산하 또 다른 계열사인 히타치 건기(건설기계) 지분 절반도 매각에 들어간다. 히타치 조선 역시 일본 2위 조선사인 재팬 마린 유나이티드 매각을 타진 중이다.

대략 이 3건이 마무리 된다면, 지난 2009년부터 본격화된 히타치의 '10년 구조조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히타치는 지난 2008년 회계연도에 7873억엔(약 8조4000억원)이란 대규모 적자(당기순손실)을 낸 이래, 이듬해인 2009년부터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가와무라 다카시 회장(2009년~2013년)이 총대를 메고,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개혁 원년인 2009년, 7000명의 직원을 내보내야 하는 고통도 있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제작소 회장 겸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 회장. 로이터 뉴스1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제작소 회장 겸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 회장. 로이터 뉴스1
TV사업부 매각을 필두로 가스터빈 등 주력인 화력발전설비 사업을 미쯔비시중공업과 통합했다. 히타치 국제전기, 리튬이온 전지 회사인 히타치 맥셀, 히타치캐피탈, 히타치 화성 등이 줄줄이 매각됐다. 히타치 전선은 히타치 급속에 합병해 현재 매각이 추진 중이다. 그 밖에 히타치헤이테크도 완전 자회사화를 완료했다.

'개혁 원년 멤버'인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2014년~현재)이 바통을 이어 받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철도 등 신사업을 향해 페달을 밟고 있다. 히타치 건기 매각 결정에는 적지않은 고민이 있었다. 히타치의 주력으로 부상한 인공지능(AI)기반 산업용 사물인터넷 플랫폼인 루마다 매출의 약 20%가 히타치 건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건설기계의 고장을 예측하고, 고객에게 부품 교환 시기를 알리는 등의 서비스가 루마다 수익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결론은 매각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룹의)전략 방향과 다른 회사와 함께 계속할 수는 없다"는 히타치 임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일본의 불황 극복기를 '불황터널'(2016년)과 '불황탈출'(2019년) 연작으로 내놓은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20년'을 겪으며 일본 기업들이 매 순간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며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다 팔아버리고, 솔루션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현재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된 히타치가 그 대표적 예"라고 제시했다.

2009년 22개였던 계열 상장사 수는 현재 4개로 줄었지만 부채는 약 1조엔으로 36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히타치제작소의 로고와 슬로건. 로이터 뉴스1
히타치제작소의 로고와 슬로건. 로이터 뉴스1

"美기업, 하청 신세는 안된다"...공격경영 페달
히타치는 이미 지난해 다시 한 번 공격 경영을 선언했다. 2019~2022년 4조5000억엔(약 49조5300억원)을 미래성장 분야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2016~2018년 3년간 투자액(2조1000억엔)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특히 기업 인수합병(M&A) 분야 투자액은 2조5000억엔(약 27조5200억원) 정도로 현재의 다섯 배 가까이로 늘리기로 했다.

올 7월에는 약 8조2000억원을 들여 스위스의 중전기 대기업 ABB의 송배전 사업을 인수, 독일 지멘스 등 경쟁사를 제치고 송배전 사업 분야에서 단숨에 세계 선두로 올라섰다.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히타치 사장은 "ABB 송배전 사업 인수는 히타치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흑선(黑船)'의 내항"이라고 강조했다. 흑선이란, 일본 에도시대 말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미국 매튜 페리 제독이 타고 온 배를 일컫는 말이다.

히타치는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분야에도 기존의 네 배가량인 2조엔(약 22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연구개발은 산업용 IoT플랫폼인 루마다로 요약되는 각종 센서를 활용한 공장 자동화,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분야에 집중한다. 소극적 투자 관행을 보인 일본 기업들과 달리, 공격 경영으로 사업구조 재편을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히타치가 IT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은 기존에 하던대로 마냥 공장만 돌렸다가는 결국 빅테이터와 AI기술로 무장한 미국 기업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히가시하라 사장은 이미 "대량생산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제조업은 더 이상 할 생각이 없다"(2018년 닛케이 인터뷰)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위기감은 더 커진 듯 하다.
일본 '재계 총리'로 불리는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 회장(게이단렌 회장)은 최근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화와 디지털화라는 세계적 트렌드가 코로나19로 단숨에 가속화 되고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서둘러 디지털화에 편승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1910년 창업한 히타치제작소는 정보기술(IT), 전력망, 산업용 시스템, 철도, 자동차 부품 등의 분야에서 33만여 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종업원 수 기준으로 도요타자동차(36만여 명)에 이어 일본 2위 기업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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