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사회

"눈에 거슬렸다" 실직 후 노숙인 된 日여성, 주민이 휘두른 흉기에 사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23 18:17

수정 2020.11.23 20:12

60대 여성, 올 2월 마트 점원 그만 둔 후 생계난 추정 
버스운행 종료 후 정류장서 새벽 시간대 기거
노숙 중에도 친척 연락처, sns계정 메모 간직 
수중엔 85원 뿐...주위 온정, 미소로 사양 
용의자 "비켜달라고 했지만 비키지 않아 화가 났다"
평범한 사람의 약자에 대한 폭력  
지난 20일 통근시간대 도쿄의 한 버스정류장. AP뉴시스
지난 20일 통근시간대 도쿄의 한 버스정류장. AP뉴시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는 코로나19 감염 확산 후 일자리를 잃고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잠을 청하던 60대 여성 노숙자가 인근 지역 주민이 내리친 흉기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범행 동기에 대해 단지 "눈에 거슬렸다", "비켜달라고 했지만 비켜주지 않아 화가 났다"고 밝혔다. 자신보다 약자에 대한 평범한 사람의 '묻지마 공격'에 일본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4시 새벽 시간대에 도쿄 시부야구 하타가야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오바야시 미사코(64)라는 여성 노숙자가 흉기에 맞아 출혈로 사망했다. 살해 용의자인 요시다 카즈토(46)는 "사건 전날 돈을 줄테니 버스 정류장을 떠나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 당해서 화가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남성은 인근에서 모친과 전통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인물로, 쓰레기 줍기 등 지역사회 봉사활동에서 나설 정도로 주변에서 보기에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는 다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성향도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경찰 조사에 따르면 히로시마현 출신의 고인은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지내왔다. 사건 현장에서 약 4km떨어진 아파트에서 3년 전부터 기거했으며, 올해 2월 마트 점원을 그만뒀다. 그 때부터 사건 당일까지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1일 도쿄 시부야 거리. AP뉴시스
지난 21일 도쿄 시부야 거리. AP뉴시스

인근 지역 주민들은 올 여름부터 버스 운행시간이 종료된 후, 약 오전 1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심야 시간대에 고인이 버스 정류장에 있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사망 당시 수중의 돈은 단 8엔(약 85원)뿐이었다. 소지하고 있던 명함 크기의 메모지에는 친척의 연락처,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계정 주소 등이 빼곡히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고인이 노숙생활을 했지만 언젠가 사회로 복귀할 것으로 믿고 이같은 메모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피해자의 남동생(62)은 이 매체에 지난해 말 누나로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지만 10년 정도 연락을 하지 않아 집이 없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단지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설마 길에서 생활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누나는)어려서 자립심이 강했고, 아나운서가 되는 꿈을 갖고 있을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어서 결혼식 사회 등을 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지역 한 여성은 사건 발생 수일 전, 오바야시씨에게 겉옷이나 스카프, 장갑 등을 주려고 했으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받지는 않았으나, 미소를 지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왜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계열 매체인 아에라닷은 "저항할 수 없는 약자를 골라 괴롭히는 비뚫어진 심리는 요시다 용의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면서 SNS상의 증오, 학교나 직장에서 왕따, 코로나 유행으로 의료 종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콜센터 직원 등에 퍼붓는 폭언 등 약자에 대한 폭력을 지적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