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비트코인 최고가라지만 신이 안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24 18:00

수정 2020.11.24 18:00

[이구순의 느린 걸음] 비트코인 최고가라지만 신이 안난다
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원을 넘었다. 2018년 초 기록한 사상 최고가 기록도 갈아치울 것이라는 낙관이 파다하다.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분석기관들은 앞다퉈 "이번 비트코인 상승장은 2017년 광풍과는 다르다"고 낙관을 내놓는다. 전통 기관투자자들이나 대기업들이 현금, 주식 투자보다 비트코인 투자를 선호한다는 게 낙관의 근거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라는 글로벌 IT기업은 비트코인에 투자해 3개월여 만에 3년간 영업이익보다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비트코인발 희소식이 연일 들리는데도 신이 안 난다.
비트코인 가격 낙관론자들과는 다른 의미로 2017년 광풍 때와는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 신이 안 난다.

2017년 비트코인 폭등기를 거치면서 2018년 시장에는 가상자산을 소재로 하는 사업 아이템들이 넘쳐났다. 가상자산으로 음식 값을 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실시간 해외송금도 할 수 있는 상상 같은 아이디어들이 흘러나왔다.

비트코인 투자자가 아니라 정작 당장 투자수익을 얻지 않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창업하겠다고 나서는 열정들이 시장을 신나게 만들었다. 날마다 새로 기업이 생겼고, 청년들은 새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성공하겠다며 흥을 돋웠다.

그런데 2020년 비트코인 상승장은 다르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고가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들만의 시장이다. 후방효과가 없다.

우리 정부는 2017년 비트코인 폭등기에 가상자산 투기로 인한 피해가 걱정된다며 가상자산 전체를 통째로 불법 취급했다. 법에 명시된 불법조항은 없지만, 가상자산은 우리 정부에서 금칙어가 됐다. 꼬박 2년 유지된 가상자산 금지 기조에 2018년 넘쳐나던 열정들은 자취를 감췄다.

비트코인이 최고가를 향해 달려가지만 2020년 시장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이 없다. 그래서 신이 안 난다.

비트코인 투자로 큰 수익을 낸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이제는 블록체인 사업에 나서겠단다. 세계적인 클라우드컴퓨팅 회사 VM웨어도 블록체인 솔루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전자결제 기업 페이팔도 가상자산 결제 사업에 본격 나섰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블록체인 기반의 세계표준을 끌어모으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블록체인·가상자산 사업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그런데 그 명단에 한국 기업은 없다.

정부는 '가상자산 없는'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예산도 지원하고, 정책도 만든다. 그럼에도 이름 들어본 기업이 앞장서서 블록체인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들은 이미 다 눈치챈 것일 게다. '가상자산 없는' 블록체인 산업이 절름발이 산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숱한 정책을 봤지만, 정부가 나서서 특정 산업을 육성하기란 쉽지 않다. 되레 부작용을 낳기 일쑤다. 반대로 정부가 훼방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올곧게 성장하는 산업은 꽤 봤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에 훼방놓지 않았으면 한다. 가상자산이라는 단어만 봐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훼방놓지 않고, 명확한 불법이 드러나기 전에는 한걸음 뒤에서 봐줬으면 한다.
상승체력을 갖춘 비트코인 상승장에 다시 젊은 열정들이 몰려들어 신나는 시장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에 관심을 조금 줄여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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