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윤석열, 져도 지는 게 아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1.30 18:00

수정 2020.11.30 18:00

보수권력에 맞서 싸우다
이제 진보권력과 난타전
강직한 검사로 이름 새겨
[곽인찬 칼럼] 윤석열, 져도 지는 게 아니다
이상향을 꿈꾸던 동물농장에 피바람이 분다. 수퇘지 나폴레옹의 독재에 불만을 품은 동물들이 모조리 처형된다. 나폴레옹의 정적 스노볼과 내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쓴다. 같은 돼지라도 권력에 대들면 얄짤없다. 조지 오웰이 쓴 우화소설 '동물농장'(1945년)에 나오는 이야기다. 권력 앞에선 인간과 동물이 다를 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권력의 화신이다. 충성하지 않는 부하들을 어김없이 잘랐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려는 대통령의 뜻에 맞서다 쫓겨났다. 후임자인 마크 에스퍼는 인종차별 시위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에 반대했다. 트럼프는 11월 대선 패배로 레임덕 신세이면서도 막판 인사권을 휘둘러 에스퍼를 경질했다.

권력자에게 쓴소리를 하면서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런 사례가 있긴 하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어린 후궁을 맞아들이고 싶었다. 신하 위징은 따로 약혼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태종을 말렸다. 직언을 따르긴 했지만, 속으로 태종은 위징이 얼마나 미웠을까. 내 눈엔 신하 위징보다 임금 태종이 더 큰 인물로 보인다. 제 아무리 소신파 위징이라도 만약 태종이 얼굴을 찡그렸다면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세의 영웅 이순신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나가서 싸우라는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 바람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왜 그랬을까. 거짓정보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왜적이 판 함정일 수도 있다고 봤다. 이순신은 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권력에 맞서다 한직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높이 평가했다. 작년 7월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우리 윤 총장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의 희망을 받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참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어쩌다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장관과 사사건건 싸우는 일이 벌어졌을까. 왜 추 장관과 더불어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애써 발탁한 '우리' 검찰총장을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나. 하필이면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말이다.

권력이란 게 그렇다. 부하가 대들면 '어쭈 이놈 봐라'가 된다. 부하 말이 옳으냐 그르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든 것만 머리에 남는다. 지난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관절 어느 부처 공무원들이 이렇게 집단행동을 겁 없이 감행할 수 있는지 묻는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 권력의 속성이 다 들어 있다. 나는 문 대통령이 여태껏 윤 총장을 갈아치우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 인내심이라고 본다. 바라건대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는 내 순진한 소망일 뿐, 현실로 돌아오면 윤 총장은 머잖아 자리에서 쫓겨날 공산이 크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은 권력자의 역린을 건드린다. 태종·위징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편싸움에 능한 한국에선 안 통한다. 윤 총장은 보수 권력과 싸웠고, 진보 권력과 싸우는 중이다. 그는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그새 윤석열이란 이름 석자는 강직한 검사의 표상이 됐다.
윤석열은 져도 지는 게 아니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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