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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톡] 중국 문화창조 '우기기'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1 18:00

수정 2020.12.01 22:55

[차이나 톡] 중국 문화창조 '우기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를 누렸다. 하지만 주변 국가에 비해 문화와 사상은 그렇지 못했다.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명망 있는 선비와 학자들을 불러 모아 책을 짓도록 했다. 문화를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여기에 동참한 선비가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의 권력자 여불위의 '여씨춘추'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책은 장사꾼이던 여불위의 열등감에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론 진나라가 정치·군사뿐 아니라 문화·사상에서도 강국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중국의 원조 주장이나 왜곡은 처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남북한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중국 최고자의 2017년 당시 발언은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치는 1500여년 전 중국 쓰촨성에서 만들어진 파오차이가 원조라거나, 당나라 장군이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충칭의 절임채소가 함께 전파돼 김치의 기원이 됐다는 설을 중국은 오랫동안 공공연하게 퍼트려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억지는 광범위해졌고 속도를 더하고 있다. 축구 스타 손흥민의 조상이 중국인이었다는 유언비어는 황당함을 넘어 실소까지 나오게 했다. 한국의 한복을 중국 명나라 때 입던 '한푸'에서 가져왔다거나,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되는 동요 반달의 뿌리가 중국이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조차 그 유래가 중국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중국의 아무 말 대잔치는 9월에 본격화된 것 같다. 시 주석은 그달 22일 '4가지 중요사항' 지시를 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문화 건설 창조를 강조했다. 관영 매체는 "5위일체(경제·정치·문화·사회·생태 문명 일체의 시진핑 통치 사상)에서 문화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문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는 지난 10월 말 5차 전체회의에서 문화산업의 번영 발전, 국가 문화의 소프트파워 향상을 14차 5개년 계획 중 하나로 꼽았다. 14·5계획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중장기 계획이기 때문에 문화 역시 그 일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결국 일부 관영 매체나 어긋난 민족주의가 이를 엉뚱한 형태로 발전시키려는 꼴이 됐다. 시 주석이 명령한 '문화 건설 창조'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 같기도 하다.

'우기는데 당할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런 논리나 근거 없이 무조건 자기 말이 옳다고 억지 주장하는 이들은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의 수준을 지켜야 그나마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 있다. 정도를 벗어나면 수용은커녕 분노가 된다.

1960년대 초 아프리카 가나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경제상황은 아주 비슷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나 1~2차 제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율이 유사했고 양국 모두 경제 원조를 받는 점도 동일했다. 그러나 30년 뒤는 달랐다. 한국은 세계 산업 강국으로 발전한 반면 가나의 발전은 더뎠다.
'문화'가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베스트셀러 '문명의 충돌'을 쓴 미국의 석학 새뮤얼 헌팅턴이 로렌스 해리슨과 공동으로 펴낸 '문화가 중요하다' 서문에 나온 글이다.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으로 '굴기'하겠다는 중국이 여씨춘추와 함께 되새겨 볼만한 책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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