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코로나, 그리고 '길 위의 노인들' [현장르포]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2 18:25

수정 2020.12.02 20:49

복지시설 문닫아 거리 배회하다
5시간 만에 얻은 급식소 도시락
추위에 떨며 거리에서 허겁지겁
"집이나 밖이나 추운 건 똑같아"
코로나19 확산세로 방역이 강화되면서 노인들의 갈 곳이 줄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공원, 경로당 등은 폐쇄됐다. 2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코로나19 확산세로 방역이 강화되면서 노인들의 갈 곳이 줄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공원, 경로당 등은 폐쇄됐다. 2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난방도 안 되는 단칸방이나, 야외나 추운 건 똑같지."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김모씨(82)는 오늘도 첫차를 타고 서울 종로3가에 왔다. 길가를 배회하다가 아침 9시부터 무료급식소 줄을 서는 게 김씨의 일과다. 그는 오후 4시가 되면 경기도 성남에 있는 다른 무료급식소로 가서 저녁식사를 때운다. 김씨는 "코로나로 복지시설이 다 닫아서 갈 곳이 없다"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밥 얻어먹고 해가 지면 집에 간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추위에 시달리며 길가를 배회하는 빈곤 노인들이 늘고 있다. 노인시설이 문을 닫아 갈 곳을 잃고, 무료급식소 도시락으로 길 위에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다. 이 노인들은 단돈 2000원이 없어서 다방을 가지 못하면서도 집보다는 밖이 낫다고 전했다.

■"집에 있으면 밥도 못 먹고…"

2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는 길가에 서서 도시락을 먹는 노인들의 모습을 찾아 볼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무료급식소 실내 이용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오전 7시부터 약 5시간가량 줄을 서서 도시락을 건네받은 노인들은 길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가방에 넣은 채 발길을 옮겼다. 한 노인은 "오늘은 주먹밥이 아니라 볶음밥"이라며 환히 웃었다.

탑골공원 인근에 있는 이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만 하루 300명이 넘는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살고 있다. 무료급식소를 10여년째 매일 오고 있다는 김씨는 "월 15만원짜리 월세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며 "2000원만 내면 종로 값 싼 식당에서 밥 먹을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어서 무료급식소에 온다"고 전했다.

도시락 배급을 기다리던 우모씨(86)는 "코로나19라서 외출하지 말라고 하는데 집에 있으면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말할 사람도 없다"며 "나이 먹어서 코로나 걸려 죽나, 집에 있다 죽나 똑같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이들보다 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은 노인들은 인근 패스트푸드점이나 다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종로3가 지하철 역 앞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이른 시간부터 노인들이 가득했다. 또 인근 다방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매장 운영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업종이 일반 음식점으로 신고돼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종로3가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정모씨(81)는 "춥고 갈 곳 없는 와중에 다방이라도 열어서 다행"이라며 "조금이라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이 카페에 온다"고 말했다.

■"차갑게 대하지 말았으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길가를 떠도는 노인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출을 삼가해야 하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다.
다만 이 노인들을 오랫동안 봐온 관계자들은 길에서 떠돌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고려해봐야 한다고 했다.

무료급식소 강소윤 총무(53)는 "실제로 무료급식소에 와서 노인들을 보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일각에선 노인들이 무료급식소에서 밥 먹고 태극기 집회 현장에 나간다고 하는데 이분들이 그럴 힘이나 있어 보이나"라고 반문했다.
강 총무는 "어려웠던 시절 힘들게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오갈데 없어진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분들을 나라가 구제해줄 수 있겠나. 그저 너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밥 한끼 편히 드실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 김준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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