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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와인]'붉은 방패 가문' 이름값 하는 칠레 블렌딩 '에스쿠도 로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7 15:17

수정 2021.01.11 13:46

<2>에스쿠도 로호 2012(Escudo Rojo 2012) 
무똥 로췰드 만드는 바론 필립 드 로췰드가 칠레서 생산
와인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작은 알마비바'로 불리기도
[스토리 와인]'붉은 방패 가문' 이름값 하는 칠레 블렌딩 '에스쿠도 로호'

[스토리 와인]'붉은 방패 가문' 이름값 하는 칠레 블렌딩 '에스쿠도 로호'


[파이낸셜뉴스] 며칠전 강렬한 붉은색 레이블에 흰색 글씨가 인상적인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와인을 만났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특급와인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schild)'로 유명한 바론 필립 드 로췰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가 칠레 마이포밸리에서 만드는 보르도 블렌딩 와인입니다.

와인의 캡슐에는 그 유명한 '다섯개의 화살'이 그려져 있습니다.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각각 로췰드, 로쉴드라고 부릅니다.

로스차일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자로 손꼽히는 가문입니다.
베스트셀러 '화폐전쟁'을 쓴 쑹훙빙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무려 50조달러(5경원)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십수년째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의 재산이 1270억달러(140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로스차일드의 재산은 상상이 안되는 규모입니다.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와 그의 다섯 아들들.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와 그의 다섯 아들들.


1815년 6월19일 새벽 영국 포크스턴 해변에 쾌속선 한 척이 급하게 배를 댔다. 브뤼셀 인근 오스탕드 항에서 밤새 영국해협의 거친 풍랑을 견디고 도착한 배였다. 한 정보원이 편지를 건네주자 네이선 로스차일드(Nathan Rothschild)는 서둘러 편지봉투를 뜯어 윗부분만 대충 훓어보고 즉시 런던의 주식거래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 편지는 로스차일드가에서 고용한 정보원들이 보내온 것으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과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벨기에 브뤼셀 근처에서 벌인 워털루 전투에 대한 전황이 담겨 있었다.
네이선이 빠른 걸음으로 주식거래소에 들어섰다. '로스차일드의 기둥'으로 불리는 자신의 자리에 기댄 네이선은 그의 거래원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거래원들이 조용히 거래창구로 이동해 일제히 영국 국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수십만 달러치의 영국 국채가 맹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가 외쳤다. "로스차일드가 알아냈다. 웰링턴이 전쟁에서 패했다!"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앞다퉈 영국 국채를 팔아댔다. 영국이 패했다는 것은 영국 국채가 곧 휴지조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몇시간의 광풍이 휩쓸고 간 후 영국 국채는 액면가의 5%에도 못미치는 휴지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이를 태연히 지켜보던 네이선이 다시 한번 눈짓을 했다. 그러자 거래요원들이 갑자기 영국 국채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 네이선은 이날 하루동안 자신이 투자한 금액의 20배나 되는 차익을 챙겼으며 영국 정부 최대 채권자로 등극했다. 이는 로스차일드가 대영제국의 경제를 손아귀에 움켜쥐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해가 지지 않는 잉글랜드 제국을 통치하는 왕이 누군지 상관하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통화공급을 통제하는 사람이 곧 대영제국의 통치자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쑹훙빙은 로스차일드가 대영제국 금융시장을 장악하는 결정적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스차일드는 대영제국을 시작으로 미국의 금융시장도 차례로 장악해갑니다. 이후 1913년에는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통해 미국 금융시장까지 접수하게 됩니다.

1744년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금업과 골동품 장사로 사업을 일으킨 이후 그의 다섯 아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로 흩어져 은행업을 벌이며 마침내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한 것입니다. 그 중 셋째 아들인 네이선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습니다. 로스차일드의 상징인 '다섯개의 화살'은 바로 이들 다섯 형제의 단결을 의미합니다.

너다니엘 로스차일드.
너다니엘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는 세계 와인 산업에서도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바론 필립 드 로췰드(BPR), 도멘 바론 드 로췰드(DBR), 꼼빠니에 비니콜 바론 에드먼드 드 로췰드(CVER)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BPR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천재로 통하는 네이선의 넷째 아들 너다니엘(Nathaniel)이 포도밭을 사들여 만든 와이너리입니다.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와인인 '무똥 로췰드(Mouton Rothschild)'가 여기서 나옵니다. 이외에도 끌레르 밀롱, 달마이약 등 그랑크뤼 클라세를 비롯한 많은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 나파밸리의 오퍼스원, 칠레의 알마비바 등도 이들의 손을 거쳤습니다.

DBR은 네이선이 가장 아끼던 막내 동생인 제임스가 보르도 1등급 포도밭을 사들여 만든 와이너리입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중 최고로 꼽히는 '라피트 로췰드(Lafite Rothschild)'를 생산합니다. 포므롤의 특급 와인 레방질과 뒤하르 밀롱 등 여러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임스 로스차일드.
제임스 로스차일드.


그러나 화합을 가장 중시하는 로스차일드에서 네이선과 제임스 형제의 후손들은 와인업계에서 150년 넘게 둘도 없는 앙숙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때 제정한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에서 2등급 평가를 받아 자존심이 상한 무똥 로췰드는 끊임없이 등급 상향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사촌 가문인 라피트 로췰드는 번번히 반대 공작을 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1922년 무똥의 와이너리는 너다니엘의 손자 필립(Philippe) 남작이 이어받게 됩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무똥을 반드시 1등급 와인으로 올려놓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만든게 '오인회'라는 사교모임이었습니다. 1등급 와이너리 4곳의 오너와 2등급 와이너리 오너인 자신이 함께 어울려 주말마다 파티를 즐기며 우의를 다지는 모임이었습니다. 1등급으로 승격을 하기 위해서는 1등급 와이너리 4곳이 만장일치로 승인을 해야 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사촌인 라피트는 무똥을 모임에서 강제로 내쫒는 일까지 생기고 맙니다. 이후에도 등급 상향 노력은 번번히 라피트에 의해 좌절됐습니다.

하지만 1973년 무똥의 1등급 진입을 반대하던 라피트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면서 무똥은 꿈에 그리던 1등급에 올랐습니다.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이를 표현하는 시를 씁니다. "나는 1등급이다. 과거엔 2등급이었다. (그러나)무똥은 변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들은 이미 1855년부터 1등급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죠.

그러나 화해는 잠깐이었습니다. 이후 두 와이너리는 또 자존심 경쟁에 나섭니다. 뒤늦게 1등급에 진입한 무똥은 늘 라피트와 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높게 책정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라피트 역시 무똥을 따돌릴 계획을 세워 가격을 계속 높이고 있고 지금도 보이지 않는 경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1904041649350800 참조>

[스토리 와인]'붉은 방패 가문' 이름값 하는 칠레 블렌딩 '에스쿠도 로호'


에스쿠도 로호 와인을 따라봅니다. 잔에 코를 가져가기도 전에 주변에 진한 과실향이 확 퍼집니다. 2012년 빈티지임에도 잔을 기울이면 코어의 빛깔이 루비보다는 퍼플쪽에 가까우며 림쪽에서도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보르도 블렌딩이지만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답게 까르미네르가 38% 섞여 있어 산도와 타닌도 아주 좋습니다.
고가의 와인이 아님에도 가볍지 않은 맛과 향에서 로췰드 가문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단결이 잘된다.
" 로스차일드 가문을 시작한 메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늘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혹시 그동안 서먹했던 형제가족이 있나요. 한자리에 모여 '다섯 화살' 얘기를 꺼내보면 어떨까요.

■에스쿠도 로호 2012(Escudo Rojo 2012)
-생산자:바론 필립 드 로췰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
-생산지:칠레 마이포밸리
-품 종:까르메네르(Carmenere) 38%,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35%, 시라(Syrah) 25%,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2%
-알코올도수:14.0%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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