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출장 신청하고 사무실 나오는 공무원들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7 18:00

수정 2020.12.08 00:59

[기자수첩] 출장 신청하고 사무실 나오는 공무원들
"재택근무를 하다가 사무실에 나가봐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출장을 달아놓고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귀를 의심했다. 한 중앙부처 주무관과 재택근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 나온 말이다. "집에서 일하다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고요? 그것도 출장까지 신청하고요?" 하고 거듭 되물었다. 역시나 답은 같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재택근무 땐 점심시간에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외 시간에 집을 벗어나면 복무위반이다. 하지만 출장을 신청하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공식적으로 외근이 허용됐으니 사무실로 출근한다.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출근하지 않았던 바로 그 사무실로 출장길에 오르는 것이다.

혹시 소수의 일이 아닐까 싶어 두루 물어봤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들 대다수가 직접 사무실로 출장을 가봤거나 이를 목격했다고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중요한 문서가 사무실에 있어서, 전화나 e메일 의사소통이 불편해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서 등등.

정부는 지난 3월부터 공무원 재택근무를 의무화했다. 사무실 밀집도 완화를 위해서다. 거리두기 단계마다 부처별 적정비율을 정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각 부처, 부서 특성이 모두 다른 터라 재택 비율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각 부처가 스스로 정한 재택근무 비율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재택근무 현황'과 '재택 시 출장 신청 현황'을 문의했으나 재택근무 복무규정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는 '두 자료 모두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규정을 정해뒀지만, 이행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

인사처는 '연간 재택근무 현황은 다음 해에 부처별로 제출받는다'고도 답했다. 올해가 다 지나야 정부 부처들이 스스로 정한 비율에 따라 재택근무를 적정하게 시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인사처는 "사무실 밀집도 완화 등 방역효과 극대화를 위해 불가피한 사유 이외에는 재택근무 중 출장처리하고 사무실에 나오지 않도록 안내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공직사회 집단감염은 지난 3월 해양수산부 이후 그쳤다.
다만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소홀히 여겼던 감염의 고리를 타고 바이러스가 이동하고 있는 것일 테다.
공직사회도 놓친 방역 구멍은 없는지 다시 살펴야 할 때다.

eco@fnnews.com 안태호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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