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규제 만들 때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8 18:09

수정 2020.12.08 18:09

[이구순의 느린 걸음] 가상자산 규제 만들 때다
"일을 풀어낼 해법으로 암호화폐가 딱인데, 암호화폐를 사용하면 기업공개(IPO)가 어렵다고 말리는 사람이 많아. 그런 규정이 있어?" 사진·음악 같은 디지털 콘텐츠 유통사업을 하는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세계 150여개 국가에서 콘텐츠 창작자에게 적정한 생산비용을 지급하고, 콘텐츠를 구입해 소비자들이 저작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는 적정비용을 받는 건강한 콘텐츠 장터를 만드는 게 친구의 사업목표다. 그런데 창작자에게 콘텐츠 생산비용을 지급할 방법이 없어 사업확장에 고민이 생겼단다. 많아야 몇 천원에서 몇 만원 단위로 콘텐츠를 구매하는데, 현재 법률에서는 세계 각국 창작자들에게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 일일이 현지지사를 설립하지 않는 한 비용 지급이 안된단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가상자산 활용이다. 스테이블코인이나 리플 같은 가상자산 글로벌 결제를 활용하면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런데 말리는 전문가들이 많단다. 사업을 꽤 훌륭하게 꾸려내는 친구는 곧 IPO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업 내용 중 가상자산이 포함되면 IPO가 불가능하다는 게 말리는 사람들의 의견이란다.

"규정은 없어. 그런데 현실에서는 맞는 말이야." 괜히 내가 미안한 목소리를 내게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참여하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최근 열린 화상회의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G7은 지난 10월 "디지털 결제는 금융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개선, 비효율성 축소, 비용 감축 등 잠재적 이점이 있지만 적절한 감독과 규제가 필요하다"며 △금융안정 △소비자 보호 △프라이버시 △과세 △사이버보안 △자금세탁 방지를 규제의 요건으로 꼽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 정부가 조만간 개인의 디지털자산 운용에 대한 규제를 발표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 정부도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만들 때가 됐다. 올해 가상자산 업계는 큰 착각을 했었다. 지난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개정될 때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틀이 마련되는 것으로 잘못 알았다. 정작 시행령이 공개되고 보니 개정 특금법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내용 외에는 담지 못했다. 가상자산에 대한 의미 규정도, 가상자산 거래 과정의 소비자 보호규정도, 가상자산을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조건도 조목조목 담기지 않았다.

당장 3개월여 뒤면 시행될 특금법이 되레 시장에 혼란을 더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규제라는 게 경기장의 게임 룰인데, 룰이 '심판 마음대로'라고 정해진 것밖에 없으니 혼란을 더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러는 사이 경기장에는 속속 선수들이 모이고 있다. JP모간, 스탠다드차타드 같은 글로벌 대형은행은 물론이고 국민은행도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고 있다.


디지털화폐 시장 주도권을 잡으려는 중국도, 통화감독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G7도 자기 유리한 입장에서 가상자산산업 규제의 틀을 만들 모양새다. 우리 정부가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에서만큼은 '해외사례'가 완성될 때까지 뒷짐지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우리 기업들의 목소리를 담은 우리의 규제 틀을 만들어 해외 주요 국가들과 협상에 나서는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cafe9@fnnews.com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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