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공수처 여야 전쟁속에 민생은 빠졌다](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0/12/10/202012101712553052_s.jpg)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무엇인지, 이번 정기국회 입법정국이 확실히 보여줬다.
과도하게 쏠린 힘이 얼마나 과격하게 사용됐는지 결과물도 똑똑히 봤다.
여야가 의논하며 주고받는 정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힘 없는 야당은 제 역할도 못한 채 반발 시늉만 내다 밀려났다. 거대여당은 자기들의 잣대로 알아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건 넣었다.
이런 상황의 중심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자리한다.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 논쟁은 뒤로하더라도 이 논의 정국에서 민생법안은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했다. 청와대에서 워낙 공수처 출범을 주시하다 보니, 여당에 경제3법·노동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은 그저 곁가지 메뉴에 불과했다.
174석이란 거대의석의 무게에 짓눌린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무섭게 질주했다. 무엇을 위해 질주했을까. 오직 공수처를 위해서다.
103석의, 이름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무기력했다.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모두 걷어차며 여론에만 기댄, 감정적인 전략에 의존한 국민의힘은 모든 법안에 대안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당초 야당 몫이었던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이 가져갔다면 부동산 법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견을 일부라도 반영했을 것이다.
'공수처의, 공수처에 의한, 공수처를 위한' 정기국회는 거대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공수처 출범으로 검찰개혁을 끝낸다는 집권여당의 계획은 이제 마무리 단계로 진입한 셈이다.
공수처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높은 분들만의 싸움이다. 권력투쟁의 또 다른 산물인데도, 국회에선 '민폐 이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말 지겨웠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3년 반이 넘도록 공수처는 민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회에는 수많은 법안들이 대기한다. 이들 법안을 여야가 논의해 처리하면서 대한민국을 바꾸는 곳이 바로 국회다. 대한민국 정치가 공수처에 매몰된 사이, 다른 법들은 그저 부수적인 대상에 머물렀다.
기업들이 경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방방 떴지만 상법이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허망하게 정치 논리에 밀려났다. 기업 담합이나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려던 여당이 되레 검찰 힘만 키워줄까봐 순식간에 백지화한 것만 봐도, 경제 이슈를 바라보는 집권여당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결국 숙원사업인 공수처 출범이란 열매는 얻었어도, 얻은 것만큼 여당이 감당할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듯하다. 야당 비토권을 없앤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할 때 본회의장에서 박수치던 여당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제1야당은 동정론도 필요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발하다 다른 법들을 위한 대안 제시 기회조차 날렸다.
공수처는 정권교체를 하면 폐지시킬 수 있으니, 공수처를 지렛대로 활용해 다른 법안 협상에 집중하자는 내부 목소리는 매몰차게 외면당했다.
힘의 균형이 깨진 의회에서 선택적 집중을 한 것이지만, 야당의 이런 전략은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법안들을 탄생시킨 원흉이 됐다. 야당 또한 이번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지해야 한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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