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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톡] 2020년 ‘혐오스러운 마츠코’를 떠나보내며

조은효 도쿄특파원
[재팬톡] 2020년 ‘혐오스러운 마츠코’를 떠나보내며
지난 13일 일요일. 어둠이 깔리기 직전 도쿄 시부야구 하타가야 하라마치 버스 정류장.

국화꽃 다발들이 놓여 있다. 행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쳤다. 약 한 달 전 이곳에서 오바야시 마사코(64)라는 노숙인 여성이 인근 주민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범행 동기는 너무나 어이없게도 "눈에 거슬렸다"는 것이었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는 마트 점원이었으나, 일자리를 잃고 수중의 돈이 바닥나면서 노숙인 신세로 전락했다. 오갈 데가 없어진 그는 생의 마지막 몇 달간 새벽을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보냈다. 현장 바로 앞은 수도고속도로가 복층 고가로 놓여 있어 밤새도록 차 소음이 이어지는 곳이다. 걸터앉기도 힘들어 보이는 폭 22㎝의 벤치가 새벽녘 그의 안식처였다.

사실 그의 사연은 지난달 23일 처음 보도한 바 있다. 국적을 떠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생의 비극을 그린 일본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속 주인공 같다는 안타까움들이 댓글로 전해져 왔다. 마츠코처럼 오바야시씨에게도 당당하고 화창했던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나, 모두가 혐오스러워하는 냄새나고 더러운 존재가 돼 동네 아이들이 휘두른 야구 방망이에 생을 마감했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 역시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다.

지난 13일 도쿄 시부야 하타가야 하라마치 버스 정류장. 이 곳 벤치에서 잠을 청하던 여성 노숙인이 지난 달 인근 주민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정류장 좌우로 국화꽃 다발이 놓여져 있다. 사진=조은효 특파원
지난 13일 도쿄 시부야 하타가야 하라마치 버스 정류장. 이 곳 벤치에서 잠을 청하던 여성 노숙인이 지난 달 인근 주민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다. 정류장 좌우로 국화꽃 다발이 놓여져 있다. 사진=조은효 특파원

오바야시씨는 노인이었고, 여성이었다. 또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노숙인으로 전락했고, 저항하지 못한 채 폭력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에게 사회 안전망은 가동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의 여성 노숙인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는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 구제해야 한다, 안되면 가족 등 공동체가 도와주고, 그래도 안되면 정부가 나선다'는 이른바 '자조(自助)·공조(共助)·공조(公助)'의 3원칙을 앞세우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자조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고, 공조(共助)도 기대기 어려워 보인다. 아베 정권의 7년간 일본의 여성고용은 약 300만명 증가했지만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여성의 연평균 소득은 100만엔(약 1040만원) 미만이 44%, 100만~190만엔(1040만~1990만원)이 38.6%를 차지했다. 오바야시씨의 이야기는 결코 일본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14~2016년의 일로 기억된다. 간밤 수년간 무수히 쌓인 스팸메일 속을 헤매며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e메일 한 통이 생각난다.

당시 기획재정부 등을 담당하며, 기초수급생활비 적용대상에 대해 기사를 썼던 것 같다. 어렴풋이 10대 후반 소녀로 기억되는데, 부친은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고, 가족 중 누군가는 장애가 있으며, 이 때문에 정부 지원금에 기대 살아가는데 소득인정기준이 바뀌면 이 돈을 받을 수 없게 돼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하소연이었다. 어떤 답을 해줘야 할지 당황했고, 결국 아무런 답을 해주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소녀는 그 후 5년간의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미안한 마음에 되짚어 본다.

나라는 다르나, 2020년 시부야 정류장의 한 마츠코를 떠나보내며, '사람이 먼저다'라는 오래된 슬로건을 떠올려본다. 최소한 안타까운 죽음만은 막아야 하지 않나. 무척 혹독한 겨울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