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블룸버그통신만 쳐다보는 동학개미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17 18:14

수정 2020.12.17 18:14

<2>블룸버그통신만 쳐다보는 동학개미들
[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블룸버그통신만 쳐다보는 동학개미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6일(현지시간) '메디톡스 대 대웅제약' 사건의 최종 판결에서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60일 안에 판결 효력을 무효화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60일이 미국의 권력 교체기와 겹치면서 실타래가 제대로 엉켜버렸다. 거부권을 떠나는 도널드 트럼프가 행사할지 아니면 들어오는 조 바이든이 행사할지 너무나도 복잡하다.

앞서 지난주엔 'LG에너지솔루션 대 SK이노베이션' 사건의 최종 판결이 내년 2월로 연기됐다. 이로써 한국 차세대 2차전지 산업을 주도하는 두 주역 간의 분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태평양 건너 이역만리에서 표류하게 됐다.
어쩌다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미래를 미국 ITC와 정치인들의 손에 맡기게 됐나. 분쟁 해결은커녕 방향타를 잃고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으니, 이 칼럼의 제목인 '원정소송 오디세이'처럼 원정전쟁에 참가했던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고난을 그린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서사시가 떠오르며 답답해진다.

이른바 동학개미 열풍이 불면서 전기 배터리 주식과 바이오 주식에 열광했던 우리나라 주주들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한국 기업 주식을 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외신 블룸버그통신만 매일 쳐다보게 된다. ITC에서 조기 패소 판결이 내려질지, 전자문서 보존 의무 위반에 따라 소위 몰수패라는 치명타를 입게 될지를 수시로 미국 언론을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한술 더 떠 ITC 최종 판결을 무효화하는 거부권을 미국 대통령이 행사할지, 한다면 트럼프가 할지 바이든이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미국 대선 뉴스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러다 보니 가끔은 자신이 동학개미인지 서학개미인지 정체성 혼란까지 겪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됐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기업들을 원정 전쟁에 출전하는 오디세우스로 만들었나. 지난 칼럼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부실한 저울, 타이탄의 도구 부재에 대해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고비용 원정소송 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까.

첫째, 한국형 e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자. 우리 실정에 맞는 전자증거개시 제도를 시행하면 우리 기업들이 굳이 먼 미국으로 갈 필요가 없다. 현재 e디스커버리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은 특허청이다. 우리나라 재판에서 자료제출 명령이 제대로 강제되지 않는 점이 큰 문제임을 파악한 특허청은 특허법 개정을 통해 한국형 e디스커버리를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둘째, 손해배상 액수 산정을 현실화하자.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허법에서는 특허권을 가진 기업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특허침해 기업의 제품 판매수익도 손해배상액 산정에 포함한다.


셋째, 리걸테크를 적극 도입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 존 파치올라 전 워싱턴DC 연방판사는 기업 간 분쟁에서 발생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빅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리걸테크의 확산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대형 로펌의 풍부한 인력을 활용하는 대기업과 법률 비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중소기업 간의 분쟁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리걸테크라는 도구가 제공된다면 '총알이 모자라서 패소하는' 억울한 경우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원정소송 시대를 마감할 수 있는 열쇠는 우리나라 입법부와 사법부가 쥐고 있다.

심재훈 미국변호사,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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