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고요와 사유로 빚은 찻사발, 황중을 얻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21 12:26

수정 2020.12.22 13:00

학고재에 전시중인 김종훈의 정호다완 대정호. 사진=학고재
학고재에 전시중인 김종훈의 정호다완 대정호. 사진=학고재

[파이낸셜뉴스] 조선의 도공이 빚은 찻사발과 달항아리는 말이 없다. 무슨 사연으로 일본에 건너갔는지 알 수 없는 조선의 다완(찻사발)과 달항아리가 그저 아득한 시간 저편을 일깨워준다. 이들 4점을 빼고 84점의 작품은 도예작가 김종훈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의 정호다완, 분인다완, 백자가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전시중이다.

막사발과 비슷한 생김새의 정호다완은 14∼16세기 제작된 도자기다. 막사발은 이보다 늦은 17∼19세기 만들어져 서민층에 널리 이용된 그릇이다.
정교함이나 무게감에서 정호다완은 쉬운 작품이 결코 아니다. 작가는 20여년 정호다완을 연구하고 제작, 한국 도예 맥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국보·보물급으로 대우받고 있는 20여점과 개인 소장의 300여점 다완을 15년간 연구한 끝에 완성한 결과물이다.

장작가마에서 소성된 김종훈의 백자 대호. 사진=학고재
장작가마에서 소성된 김종훈의 백자 대호. 사진=학고재

그의 정호다완은 대정호, 소정호, 청정호 3종류였다. 대정호는 굽너비가 5.7㎝로 소정호보다 조금 큰 사이즈다. 청정호는 푸른빛을 머금은 자기다. 작업 과정은 소통과 고요의 시간을 거친다. 작가는 "찻사발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작가가 만든 도화지위에 사용하는 분들의 시간과 차에 의한 사유를 그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호다완의 시작은 적합한 태토를 찾는 일부터다. 오랜 숙성을 거쳐 수비와 꼬막을 물레위에 올린다. 물레위에서 기물을 성형할때 그릇 위에 작가의 손이 기억되고 생각이 부여된다. 물레질에 감추어진 속살은 굽질에 의해 드러난다. 김종훈의 백자는 온화하다. 요즘 흔히 쓰는 가스가마가 아닌 작가마를 사용한 흔적이 불균형한 외형에서도 잘 보여진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팔도다완. 찻잔 표면에 조선 팔도 이름이 철화로 새겨져있다. 사진=학고재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팔도다완. 찻잔 표면에 조선 팔도 이름이 철화로 새겨져있다. 사진=학고재

전시실 깊숙한 곳에서 발을 멈추면 조선 팔도의 이름이 철화로 쓰인 다완을 보게 된다. 임진왜란때 끌려간 조선 도공 후예 작품이 아닌가싶은 그릇이다. 표면에는 기름띠 같은 색감도 보인다. 전형적인 라쿠 기법으로 일본 라쿠다완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찻잔 표면에 새겨진 조선 팔도의 이름에서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누군가의 얼굴이 겹친다.

이 전시 타이틀은 '춘추IV. 황중통리:김종훈 도자'전이다. 주역 곤괘에 따르면 땅의 아름다움을 '황중통리(黃中通理)'라고 표현했다.
내면의 지성을 갈고닦아서 이치에 통달하는 마음 자세를 일컫는다. '황중'은 내면의 응축된 황색, 곧 땅의 색으로 해석된다.
학고재측은 "김종훈은 사기장의 마음과 생각을 받아들여 내면에서 곱씹고 정제해 밖으로 쏟아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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