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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특급논설] 김대중은 왜 전두환을 용서했나

철천지 원수 같은 전두환을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용서 
정파 뛰어넘는 도량에 경탄 

남아공 만델라도 큰 정치인 
보복 접고 흑백 협치 길 닦아 

이명박ㆍ박근혜 사면 논란 
文대통령 통합정치 펼 기회 

[곽인찬의 특급논설] 김대중은 왜 전두환을 용서했나
1973년 김대중은 일본 도쿄에서 괴한에 납치돼 생사를 오가는 고초를 겪다 극적으로 살아났다.(자료=김대중도서관)

◇ 김대중 vs 전두환·박정희 악연

[파이낸셜뉴스]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제발 사형만은 면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법정에서도 속으로 기도했다. 재판장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었고, 입술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징역이었다. 입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었다. 재판관의 입이 찢어졌다. 김대중, 사형”(‘김대중 자서전 1권’ 395쪽).

1980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김대중은 내란음모 사건의 주범으로 감옥에 갇혔다. 9월 군법회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김대중은 당시 자기의 심정을 자서전에서 저렇듯 솔직히 털어놓았다.

김대중에게 전두환은 철천지원수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돌연 사망하자 권력에 공백이 생겼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있지도 않은 죄를 김대중에게 뒤집어씌웠다.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김대중은 1982년 12월 사형을 면하는 대신 미국으로 쫓겨난다.

그 전에도 김대중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1971년 4월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뒤 형극의 길이 시작됐다. 같은 해 5·24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지원 유세차 전국을 누볐다. 총선 하루 전 광주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 맞은편에서 갑자기 대형 트럭이 나타나 차를 덮쳤다. “나는 팔의 동맥이 두 군데 잘렸고, 다리에도 찰과상을 입었다. 권노갑 비서와 이명우 경호원도 크게 다쳤다.” 이 사고로 김대중은 평생 다리가 불편했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건 약과다. 1972년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다. 당시 일본에 있던 김대중은 망명을 택했다. 그럼에도 박정희는 정치적 라이벌을 그냥 두지 않았다. 이듬해 도쿄 한복판 호텔에서 김대중은 괴한들에 납치됐고, 배로 옮겨져 바다에 버려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게 하고 묶었다. 두 발도 묶었다. 칠성판 같은 판자 위에 눕히더니 몸을 위, 아래, 가운데로 나눠 송장처럼 세 군데를 묶었다. 두 손목에는 30~40kg 무게의 돌인지 쇳덩어리를 달았다.”

이때 바다 위에 비행기가 떴고, 괴한들은 서둘러 도망쳤다. 그 덕에 김대중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김대중은 말한다. “납치 사건은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김대중 살해 미수 사건’이라야 맞다.”

1976년 3·1 구국선언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전에 박정희는 긴급조치 9호를 발령했다.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과 반대를 봉쇄했다.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했다. 김대중과 함석헌 등 재야인사 10명이 서명했다. 며칠 뒤 김대중은 새벽에 끌려갔다. 1심은 8년, 항소심은 5년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5년형이 확정됐다. 김대중은 1978년 12월 형 집행정지 특별사면으로 석방된다.

1979년 10·26 사태가 일어나면서 민주화의 봄이 오는 듯했다. 하지만 김대중과 군사독재 정권과의 악연은 고래심줄처럼 질겼다. 권력자만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바뀌었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아바타일 뿐이다. 김대중은 1987년 이른바 6·29 선언으로 사면·복권이 이뤄질 때까지 줄기차게 고초를 겪는다.

◇ 김대중의 종교적 신념

이런 악연을 안다면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한 것은 놀랄 노자다. 두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 구속시켰다. 김 대통령은 당선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두 사람을 풀어줬다. 박정희가 살아 있었다면 그 또한 용서하지 않았을까.

[곽인찬의 특급논설] 김대중은 왜 전두환을 용서했나
1999년 12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등을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로 초청해 송년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전 세계의 지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행스런 일”이라며 “이는 여기 있는 분들이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또 “정부가 소신을 갖고 할 수 있도록 여러 지도자들이 가르침을 주고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자료=김대중도서관)

“전·노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것이다. 평소 내가 설파하던 ‘용서론’을 실천하기로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앞으로 더 이상의 정치 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내 염원을 담은 상징적 조치였다.” 김대중이란 인물의 그릇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용서는 김대중의 종교적 신념과도 연관이 있다. 1976년 3·1 구국선언 관련 1심 최후진술에서 김대중은 “면회하러 온 제 안사람(이희호 여사)이 (신약성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제12장 제14절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긴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 군법회의 최후진술에서도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내 마지막 유언입니다”라고 말한다.

◇남아공 만델라의 용서

김대중은 종종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과거 남아공은 인종차별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악명을 떨쳤다. 흑인 지도자인 만델라는 27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남아공 백인 정부는 1990년 마지못해 만델라를 석방한다. 자유의 몸이 된 만델라는 곧바로 총을 들었을까? 아니다, 그는 백인 드 클레르크 대통령과 평화로운 정권 교체 로드맵을 짰다. 그 공로로 1993년 두 사람은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평화롭게 종식시키고, 새롭고 민주적인 남아공의 터를 닦았다”는 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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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오른쪽)과 데 클레르크 부통령./뉴스1

이어 1994년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압도적인 다수당이 됐다. 드 클레르크의 국민당은 2위를 차지했다. 새로 구성된 의회는 만델라를 대통령, 드 클레르크를 부통령으로 뽑았다. 그야말로 통합 거국내각이다. 만델라는 아예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은 백인으로 뽑았다. 경제는 경험이 많은 실무관료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지껏 남아공은 내전을 겪지 않고 흑백 간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공로가 만델라에게 있음을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김대중(2000년)과 만델라가 노벨평화상 수상자 명단에 같이 이름을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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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새해 첫 날인 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할 뜻을 밝혔다./뉴스1

새해 벽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할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반발이 거세다. 특히 민주당 쪽 반대가 심하다. 잘못했다고 사과도 안 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 재판도 안 끝났는데 벌써 무슨 사면이냐는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엔 사면 반대 청원도 올랐다. 이 대표가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

반대할 이유를 대라면 한도 끝도 없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면 사면 못한다. 그러면 이렇게 한번 물어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를 사면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게 더 어려운가.

전직 대통령 사면은 큰 정치다. 자기 편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보고 하는 정치다. 사과는 사전에 조율하면 된다. 박근혜 사면은 대법원 재판 끝나고 하면 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합의 정신이다. 이낙연 대표는 신년사에서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통합은 이 대표의 지론이다. 대선 유력 후보인 그가 반대파를 설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면권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선택의 길목에 섰다.
긴가민가할 땐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쎄,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문 대통령이 이제야말로 약속을 지킬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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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