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정인이 사건' 다른 경찰서라면 달랐을까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07 14:39

수정 2021.01.14 09:03

양천경찰서장 교체에도 '우려' 지속
분리조치 후 민원 쏟아지면 담당자 몫
제도 뒷받침 안 돼 vs. '보신주의' 바꿔야
[파이낸셜뉴스]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고 정인양(입양 후 안율하·사망 당시 16개월)이 숨지기 20일 전 이뤄진 경찰신고 녹취가 공개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신고자인 소아과 의사가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라고 언급했고 엄마 모르게 어린이집 원장이 병원 진료를 봤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정식 수사에 돌입하지 않았다. 양부모와 분리조치도 하지 않아 사실상 정인양 죽음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입양 후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생후 16개월째에 사망한 정인양 입양 전후사진. fnDB
입양 후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생후 16개월째에 사망한 정인양 입양 전후사진. fnDB

■학대신고 100명 중 분리는 13명뿐
7일 국회와 경찰 등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 사건 중에서 아동과 가해자인 가족이 분리조치되는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경찰서에서 부적절한 성접촉이나 지속적인 학대가 명확히 입증되는 경우 외엔 분리조치가 쉽게 이뤄진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 신고 2만4604건 중 분리조치가 이뤄진 건 3287건에 그친다. 비율로는 13.4%다.

주변에서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할 만큼 사안이 무겁지만 10명 중 1명만이 가해자로 의심되는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경찰조사를 받고 함께 집으로 돌아간 아동 중 상당수는 이전보다 더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 정인양 사건에서도 5월과 6월, 2차례 신고를 거친 뒤 양모 장모씨의 학대 방식이 교묘해졌다. 장씨는 정인양을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않았다. 외부에 정인양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알려지는 걸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정인양은 7월에 10번, 8월엔 20번이나 결석했다. 7월부터 9월까지 정상등원한 날은 불과 6일이었다. 같은 기간 친딸 안모양은 정상 등원했다. 어린이집 교사는 장씨가 매우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고 증언한다.

정인양은 장씨가 유방확대 수술을 받은 뒤에야 다시 등원했다. 어린이집 원장이 장씨 몰래 아이를 소아과로 데려가 진료를 받도록 한 것도 이때 있었던 일이다. 정인양을 진단한 소아과 원장은 경찰에 마지막 학대의심 신고를 했다. 공개된 통화녹취는 소아과 원장과 경찰관 사이에 이뤄진 통화다.

이에 대해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비록 양부모 측이 구내염이 기록된 진단서를 제출했다고 해도 학대 신고가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더 진행했다면 아동학대가 없었다고 마무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담당자에 대한 문책을 넘어 현재 진행 중인 형사사법 체계 변경 과정에서 문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경찰이 정인양 양부모 측이 제출한 의사 소견서를 근거로 사건을 내사종결해 비판을 받고 있다. fnDB
경찰이 정인양 양부모 측이 제출한 의사 소견서를 근거로 사건을 내사종결해 비판을 받고 있다. fnDB

■"분리했다 소송당하면 누가 도와주나"
일선 경찰관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정인양 사건이 양천서가 아닌 다른 경찰서로 갔다고 해도 분리조치가 이뤄지고 제대로 처리됐을 거라고 장담하는 이는 얼마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선 경찰관은 “신고한 사람 말고 다른 의사가 별 문제없다는 진단을 가져오고 명확한 학대 증거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16개월짜리 아이를 부모랑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조직 내 보신주의를 비판했다. 이 경찰관은 “만약 담당자가 ‘이거 분리해야 된다’ 해서 분리했다가 소송 걸리고 재판까지 가면 조직에서 지켜줄 줄 아느냐”며 “실제로 분리했다가 선고유예가 나고 그런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지휘책임을 물어 대기발령조치된 이화섭 양천경찰서 서장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던 상황이라 부모와 영아를 분리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올해부터 수사종결권을 갖고 한층 강한 책임을 부여받은 경찰에 우려의 시선도 쏠린다.
스스로 3번의 신고를 내사종결처리하며 누구보다 도움이 간절했을 정인양을 끝내 사망케 한 경찰이 제 권한을 적절히 행사할 역량이 못 된다는 주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책임지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건도 (경찰이) 늑장을 피우고 무사안일하게 처리할 때가 많다”며 “정인이 사건이 그 경찰서가 특별히 못나서 나온 사건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입양 이후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생후 16개월만에 췌장 절단으로 숨진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 수목장 묘지에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간 모습. 양부모가 이곳에 정인양을 안치한 뒤 약 1달 간 찾은 사람이 없었다고 알려졌다.<div id='ad_body3' class='mbad_bottom' ></div> fnDB
입양 이후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생후 16개월만에 췌장 절단으로 숨진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 수목장 묘지에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간 모습. 양부모가 이곳에 정인양을 안치한 뒤 약 1달 간 찾은 사람이 없었다고 알려졌다. fnDB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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