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결혼예물 맡기고 임대료 마련"…전당포 쌓이는 코로나 취약층 사연

뉴스1

입력 2021.01.08 07:01

수정 2021.01.08 09:21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전당포 간판. © 뉴스1 김유승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전당포 간판. © 뉴스1 김유승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의 한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들 © 뉴스1 김유승 기자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의 한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들 © 뉴스1 김유승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식당 사장님들이 부모님 유품이나 결혼 예물을 가지고 찾아와요."

서울 종로5가에서 34년째 전당포를 운영하는 전모씨(70대).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형편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이 돈을 빌리지 못해 전당포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임대료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전당포들은 이자가 연간이율 24%로 법정최고금리에 달했지만 중소상인들은 이자가 저렴한 은행에 갈 수조차 없을 만큼 신용도가 내려가 있었다. 반복된 사업 실패로 돈을 갚지 못하자 제1·2 금융권 대출에서 소외된 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소중한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며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최선이었다.



7일 종로4가 인근 전당포 사장 A씨(60대)도 비슷한 상황을 전했다. A씨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낡은 결혼 금반지를 가지고 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A씨는 "얼마 전에 한 할아버지는 자식 두명 사업이 잘 안 된다면서 자신의 결혼 금반지를 맡기고 50만원을 빌려갔다"고 전했다.

그는 '물건을 되찾아간 이는 아직까지 없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서 "상황이 좋아져야 원금을 갚고 물건을 되찾아 갈 텐데, 아직은 다들 힘드니까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당포를 찾는 소상공인들의 업종은 다양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 외에도 귀금속 매장·한복매장·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있었다. 비록 이들의 업종은 달랐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침체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식당 업주 외에도 종로5가 인근 광장시장에서 한복 매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종종 전당포에 찾는다고 했다. 전씨는 "한복가게 사장들이 이전부터 장사가 안 됐는데 코로나19로 소비가 더 줄어들어 크게 힘들어 한다"면서 "가게 임대료 마련을 위해 사연이 담긴 14K, 18K 금반지 등을 맡기고 간다"고 말했다.

종로3가의 한 빌딩 5층에서 영업 중인 이모씨(60대)는 귀금속매장 사장들을 자주 맞이하는 편이다. 이씨는 "주변 귀금속매장에서 임대료나 직원 월급 마련을 위해 판매용 금제품을 맡기고 간다"면서 "사장님들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운 건 말할 것도 없고 다들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B씨는 공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임대료 마련을 위해 발걸음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B씨는 "인근에서 액세서리를 만드는 수공업 공장이나 미싱공장 사장들이 코로나19로 형편이 어려워졌다"며 "일주일에 공장 가동을 2번 한다고 하소연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어려워진 형편에 전당포에 달마다 꼬박꼬박 내던 이자를 밀리는 소상공인과 서민들도 있었다. 청량리에서 15년째 전당포를 운영하는 80대 C씨는 속초에서 오리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손님의 사연을 전했다.

C씨는 "예전에 명품 시계를 맡기고 돈을 빌려간 오리고깃집 사장이 코로나19가 터졌어도 이자를 잘 냈는데, 얼마 전에 전화가 와 이제는 이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려왔다"며 "오랫동안 신의를 쌓아온 지인이라 봐주기로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돈을 빌려간 주부들도 이전엔 식당 소일거리를 하면서 이자를 잘 낸 편이었는데 지금은 코로나에 식당들이 문을 닫으니 이자를 밀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10월19일부터 11월5일까지 소상공인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영향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에 올해 사업환경이 전년보다 악화됐거나 악화가 예상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63.7%로 나타났다.
경영 악화로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들었다는 응답은 전체의 70%에 달했다. 이들의 평균 매출 감소 비율은 37.4%였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회장은 "자영업자 대출이 역대 최대로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신용등급이 낮은 영세 상인들은 대출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대출 문턱을 낮춰 영세 소상공인도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한도도 충분히 높여야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