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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칼럼] 증시 거품 보글보글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11 18:00

수정 2021.01.11 18:00

코스피 3000 가볍게 돌파
홍남기·이주열 등 경고음
文대통령도 제 역할 하길
[곽인찬 칼럼] 증시 거품 보글보글
대통령들은 거품 걱정보다 주가가 먼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놓고 연방준비제도(Fed)에 금리인하 압력을 넣었다. 제롬 파월 의장을 향해 "해임하겠다"는 으름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3월 백악관 브리핑에선 돌연 파월을 추켜세웠다. 코로나 사태 속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문재인 대통령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연신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연준과 거의 동시에 한은도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대폭 내렸다. 이어 5월엔 0.5%까지 낮췄다. 역대 최저 수준이다.

그 덕일까, 두 나라 증시는 연일 뜨겁다. 코스피는 3000선을 거뜬히 뚫었다. 이 추세라면 연내 4000도 무난해 보인다. 뉴욕 증시에선 다우존스 등 3대 지수가 앞다퉈 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신중함은 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런 문 대통령이 최근 주가지수를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은 뜻밖이다. 11일 신년사에선 "2000선 돌파 14년 만에 주가 3000시대를 열며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11일 코스피 종가는 3148을 찍었다.

전임자들과 비교하면 문 대통령의 주가 점수는 양호한 편이다. 2017년 5월 케이프투자증권은 노태우부터 박근혜까지 대통령 6명의 재임 중 코스피 성적표를 냈다. 이에 따르면 1등은 단연 노무현이다. 참여정부는 코스피 616으로 시작해 1686으로 마감했다. 무려 174% 올랐다. 외환위기를 겪은 김영삼이 최하위로 처진 것은 당연하다. 672에서 시작해 540으로 끝났으니 마이너스 19%다. 순위를 매기면 노무현-이명박-김대중-박근혜-노태우-김영삼 순이다.

문 정부는 2017년 코스피 2292(5월 8일)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11일 종가(3148)를 기준으로 상승률이 37%를 웃돈다. 노무현에 이어 2위다. 이러니 누구라도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코스피가 11일 장중 3200선을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다. /뉴시스
코스피가 11일 장중 3200선을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다. /뉴시스


대선 유세에서 주가 공약은 단골 메뉴다. 노무현은 1500~2000시대를 예고했다. 이명박은 임기 첫해 3000, 5년 내 5000을 공언했다. 박근혜는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한국거래소를 찾아 "5년 내 코스피 3000시대를 꼭 열겠다. 두고봐 달라"고 말했다. 그나마 약속을 지킨 사람은 노무현뿐이다. 코스피는 2007년 7월 2000 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임기말에 1600선으로 주저앉았으니 절반의 성공이다. 다른 이들은 에누리 없이 '뻥'이다.

문 대통령은 유세 때 주가 애드벌룬을 띄우지 않았다. 나는 문 대통령이 주가 이슈만큼은 이 같은 신중함을 고수하길 바란다. 3000 넘었다고 자랑하는 것, 이해한다. 다만 주가는 럭비공과 같아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경고를 곁들였으면 한다. 장차 4000으로 나아갈지, 다시 2000대로 물러설지는 신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과열과 거품 붕괴는 동전의 양면이다. 저금리에 기초한 유동성 장세가 무한 지속될 수는 없다. 홍남기 부총리나 이주열 총재 같은 이코노미스트들은 슬슬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이때 대통령이 슬쩍 거들면 효과가 남다르다.
대통령더러 둠세이어, 곧 재앙을 예언하는 비관론자가 되라는 게 아니다. 다만 빚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로 돌변할 수 있는지 틈틈이 사이렌을 울려야 한다.
그 덕에 시장이 '비이성적 과열'에서 벗어나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공을 기꺼이 문 대통령에게 돌리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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