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기업들이 한국 법정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13 18:00

수정 2021.01.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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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원정소송 오디세이] 기업들이 한국 법정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어느덧 마지막 칼럼이다. 작년에 칼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원정소송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미국 대선 결과는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했다. 시리즈를 마치는 지금 미국은 민주당이 행정부와 하원은 물론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상원마저 장악하며 향후 16년간의 정책 기조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졌다. 원정소송이라는 대항해를 앞둔 우리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16년 동안의 풍향이 정해진 셈이다. 그러나 낯선 해외 관할지에서의 원정소송은 여전히 곳곳에 숨은 암초와 소용돌이를 파악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극도의 분열에서 치러진 작년 미국 대선은 총만 들지 않았을 뿐 1861년의 남북전쟁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남북전쟁의 명분은 노예제 폐지였다. 그러나 이 무력 내전(military civil war)의 본질은 북부 주도의 공업국가로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북부연합과, 남부 주도의 농업국가로 남는 것을 고집했던 남부연합 간의 국가 미래 방향성 결정을 위한 분쟁이었다. 작년 말 마치 제2차 남북전쟁처럼 치열했던 미국 대선 역시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트럼프의 분열정치 종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 내전(election civil war)의 본질은 미국 서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를 재편하려는 세력과, 현상 유지를 고집하며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거부하는 남부와 중부 중심 블루칼라 연대 간의 분쟁이다.

역사적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차례에 걸친 역사적 분쟁은 미국 조지아주 혈투로 마무리됐다. 1861년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남부군의 심장이던 조지아주의 수도 애틀랜타가 함락되면서 실질적인 종결을 맞았다. 이번 선거 내전 역시 트럼프 연대의 아성이던 조지아주가 바이든에게 넘어가고,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를 통해 공화당의 상원 과반이 무너지면서 종결됐다.

'원정소송 오디세이' 시리즈는 우리 기업들이 치러야 하는 고비용 원정소송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책적 제안을 제시했다. 게임체인저가 된 리걸테크를 말하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배심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른 한편 희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특허청은 지식재산권 강국 코리아를 위해 e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앞장서고 있고, 금융위원회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분석 시대에 부응하도록 공인회계사 시험을 전면 개편했다.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는 승소의 핵심인 결정적 증거(일명 스모킹건) 입증 방식의 무게중심이 증인 신뢰도(credibility)에서 증거 진정성(authentication)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간파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고, 한국규제학회는 최첨단 리걸테크로 무장하는 한국 법조계의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되는 불합리한 규제를 연구·분석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자증거개시제도 도입과 손해배상제도 현실화를 제안했다.
이처럼 국익을 위해 퍼즐을 맞춰 나가는 여러 기관과 학회에 원정소송 오디세이의 희망찬 다음 여정을 맡긴다.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인 필자가 기대하는 2021년은 제도 개혁을 통해 한국 기업 간 분쟁을 국내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도록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신축년 새해가 '왜 우리 기업들은 다시 한국 법원으로 돌아오는가'를 연구하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심재훈 미국 변호사, 기업분쟁 해결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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