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드라마 속 자살 묘사···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19 13:43

수정 2021.01.19 13:43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 만들었지만
현장에선 "크게 고려 안 돼" 목소리
방통위 시정권고 사례 많지 않아
[파이낸셜뉴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난 2019년 4가지 기준을 담은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TV와 영화 등에서 부적절한 자살 장면이 거듭 표현돼 의도치 않은 불상사가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영상물은 끊이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보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자살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돼 논란이 되곤 한다.

작가와 제작자들은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자살이 현실 가운데 존재하고 작품에서 반드시 묘사돼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알리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는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알리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유명무실' 영화·드라마 가이드라인
19일 방송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자살 관련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 방영된 <허쉬>와 <펜트하우스> 등에서 자살방법이 구체적으로 묘사됐고 <경이로운 소문>도 가족들이 모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묘사가 있다. 이 모두 가이드라인 위반이다.

가이드라인은 모두 4가지 기준으로 이뤄져 있다. △자살방법과 도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처럼 제시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며 △동반자살이나 살해 후 자살 같은 장면을 지양하고 △청소년 자살 장면은 더 주의한다는 게 그것이다.

가이드라인 뿐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무분별한 자살 관련 콘텐츠가 제작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19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금지하는 자살묘사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특히 '자살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자살의 수단·방법·장소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 '사건 현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금했다.

방심위는 이를 어긴 콘텐츠를 발견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 방송국에 대한 재제조치를 요청하고, 방통위는 이를 받아 시정권고를 해야 한다.

■현장에선 문제의식 크지 않아
문제는 이 같은 기준이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극 전개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살 상황의 급박함이 어느 정도 시청률을 담보하기 때문에 자살 장면은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그저 스쳐지나가도 되는 장면을 수 분 동안 집중해 묘사하기도 하고 자살하려는 인물을 클로즈업하거나 감정이 담기도록 담아내기도 한다.

방통위로부터 시정권고를 받는 사례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자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콘텐츠가 큰 문제의식 없이 제작되는 배경이다.

그동안 이런 설정과 연출이 보는 이에게 거부감을 주고 우울감을 가중하며 심지어는 유사행동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큰 변화는 없는 형편이다.

<스카이캐슬>의 총기자살 장면이 논란이 된 이후 방송작가 4명 등 각계 전문가 11명이 참여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한국방송작가협회가 나서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극적인 자살 장면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을 막고자 마련된 이번 가이드라인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그때뿐이었다.

7년차 작가 이모씨는 “의도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살이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극한에 이른 심경을 보여줄 수 있어서 아예 안 나오게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 어겼다고 어디서 징계를 한다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표현하는 걸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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