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왠지 엉성한 ‘공룡경찰’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20 18:00

수정 2021.01.20 18:00

검찰 피하려다 경찰공화국
공수처·검찰은 멀리 있지만
경찰은 가까이 있어 더 걱정
[노주석 칼럼] 왠지 엉성한 ‘공룡경찰’
'한국판 FBI'(미국 연방수사국) 국가수사본부는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새해 업무가 시작된 지난 4일 서울 통일로 경찰청에서 열린 국가수사본부 현판식에 참석한 김창룡 경찰청장과 박정훈 국가경찰위원장 그리고 최승렬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가 테이프를 잘랐다. 수사본부장은 외부개방직 공모절차를 밟는 중이다. 공수처장이 없는 신생 공수처의 출범은 생각할 수 없지만 국수본은 다르다. 본부장이 없어도 국수본은 잘만 돌아간다.

75년 경찰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룡경찰' 시대를 알리는 국수본 출범은 검찰개혁과 검찰총장 죽이기, 초대 공수처장 인선에 가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비판이 따가웠는지 경찰조직을 국가경찰, 수사경찰, 자치경찰로 묘하게 쪼개 놓았다. '한지붕 세가족'이다.

조직도를 살펴보면 경찰청장은 정보와 보안 등 국가경찰 업무를 맡고, 수사본부장은 수사업무를 전담한다. 생활, 여성, 지방행사 경비 등 자치경찰 업무는 시도지사 직속의 시도경찰위원회 산하에 놓였다. 권력분산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경찰청-지방경찰청-경찰서-파출소'라는 기존의 경찰일원화 뼈대를 고스란히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권력은 수사권에서 나온다. 이제 경찰은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종결권까지 휘두르는 어마무시한 기관이 됐다. 그러나 실제 수사영역에서 지방경찰청장이나 경찰서장이 경찰청장 아닌 수사본부장의 지휘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식구'도 아닌 ‘외부자’ 수사본부장이 3만여명에 이르는 수사인력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수사본부장은 말로만 한국판 FBI 국장일 뿐 독립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FBI를 모델로 수사기관을 만들었다면 경찰청 예하조직으로 만들지 말아야 했다. FBI가 미국 법무부 소속인 것처럼 국수본도 한국 행정안전부 소속인 게 맞다. 일반수사는 물론 대공수사권까지 거머쥔 수사본부장은 경찰의 제2인자임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공화국'을 피하려다 '경찰공화국'을 만들었다. 소시민이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 꼴이다. 수사와 정보를 장악한 경찰청장은 오로지 임면권자의 눈치만 보면 된다. 경찰은 그동안 검찰의 우두머리가 검찰청장이 아니라 검찰총장인 점을 부러워했다. 머잖아 '경찰총장' 격상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9년 버닝썬 사건 당시 서울 강남경찰서장은 이미 경찰총장이었다.

권위주의 시절 지방검찰청이나 지청에 부임한 검사는 상석에 앉아 삼촌뻘 경찰서장을 턱짓으로 부렸다. 다들 새파란 검사를 '영감님'으로 모셨다. 직책도 부이사관급 검사가 서기관급 경찰서장보다 위다. 차관급 지방검찰청 검사장은 치안감급 지방경찰청장보다 격이 높다. 이게 다 경찰통제용 장치였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길거리의 법칙을 체감해본 사람이면 안다. 검찰이나 공수처는 멀리 있지만 경찰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우리네 일상에서 검찰이나 공수처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지만 경찰은 무시로 맞닥뜨린다는 것을. 신생 수사기관 공수처가 검찰을 견제하는 동안 경찰은 '노 마크' 상태라는 것을.

폭주하는 공룡경찰을 어떻게 통제할지 걱정이다. 경찰의 권한남용을 견제할 장치가 마뜩잖기 때문이다.
자치경찰을 완전히 분리하는 이원화 대신 기존의 일원화를 유지하는 바람에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최소한 독립적인 국가경찰위원회가 경찰의 인사·예산권한을 행사하도록 추가적인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엉성한 공룡경찰로 말미암은 폐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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