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무섭고 힘든데"… 혼자 살라고 등 떠밀리는 '열여덟 어른'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31 17:25

수정 2021.01.31 17:25

만18세면 보육시설서 보호 종료
해마다 2500명 '홀로서기' 압박
자립 돈 없어 아르바이트로 연명
취업알선 등 자립여건 조성 시급
"무섭고 힘든데"… 혼자 살라고 등 떠밀리는 '열여덟 어른'
2500명. 매년 보호가 종료되는 아동·청소년의 수다. 보육원, 위탁가정, 그룹홈(공동생활) 등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만 18세 생일은 법적·경제적 사망선고와 같다. 시설 보호가 끝나 홀로서기에 나서야 하는 나이여서다. 전문가들은 퇴소 뒤 후속 조치가 없다면 '홀로 무너지는 시작'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2월 광주 한 보육시설의 17세 청소년이 스스로 생명을 거뒀다. 시민단체는 '홀로서기 압박'을 극단적 선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확정된 1년여 후 미래를 비관한 예고된 비극이라는 지적이다.

■퇴소 후 지원제도, 자립엔 '역부족'

1월31일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발간한 '2019년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재작년 보호가 종료된 아동은 총 2587명이다. 이를 포함해 5년간 2677명(2015년), 2703명(2016년), 2593명(2017년), 2606명(2018년)을 기록하며 매년 2500명을 넘어왔다.

문제는 이들 아동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보육원 등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취업 준비·입시 등에 한해 연장 가능하지만, 그 권한은 오롯이 시설장에게 부여돼있다. 무엇보다 경제적 능력과 주거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 빗장이 풀린다는 우려가 많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보호종료 시 자립정착금 500만원이 주어진다. 3년 동안은 매달 30만원의 자립수당도 지급된다. 대학입학금도 지자체별로 150만~500만원 수준에서 지원하고, 아동발달지원계좌(CDA) 같은 금융 지원책도 있다.

하지만 실제 자립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보육원 생활을 한 고모씨(22)는 "자립정착금은 전부 입시 학원비로 들어갔고, 매월 나오는 수당도 홀로서기에는 부족했다"며 "월세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3~4개씩 하는 친구들도 봤다"고 털어놨다.

실제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취업 보호종료아동 1146명 중 월 평균 150만원을 못 버는 경우가 43.2%(495명)로 나타났다. 주거 실태도 열악했다. 전체 2587명 가운데 자취, 기숙사·친인척 집 등 거주 비율이 61.9%(1601명)에 달했다.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는 "이들 통계마저도 연락이 닿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라며 "드러나지 않은 퇴소 아동들의 범죄 피해·빈곤·죽음 등 참상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자립의 기준은 연령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단발성 금전 지원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자립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첫 단추가 연령 상향이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보호종료 연령을 22세로 높이고 이들에 대한 국가의 교육·건강·안전 책임을 명문화한다는 게 법안의 뼈대다.

다만 나이를 퇴소 기준으로 삼는 데 대한 우려는 있다. 퇴소 아동들은 시설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데다 인적 네트워크도 부족해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는 이유다. 반면 보호시설은 곧바로 돈 벌 수 있는 직종에 취업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퇴소 아동들의 대학진학률은 14%가 채 안 됐고, 취업자 56%가 판매직이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씨는 "현실이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고 밝혔다.


이에 자립의 기준을 '정착 여부'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윤환 대표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1~2년 계약직 취업이 자립의 척도인가"라고 반문하며 "기준을 현실화하고, 퇴소 시점을 정규취업·창업·결혼 등 또 다른 법적 테두리에 진입했을 때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동안전위원회 이제복 위원장도 "막 퇴소한 아이들을 위한 연령 상향 소급 적용 등은 의미 있겠으나,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라며 "교육·상담 프로그램 마련, 보증금 지원, 취업 알선 등의 현실적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같이 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김태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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