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특등 머저리 vs 쓸모 있는 바보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01 18:00

수정 2021.02.01 18:00

대북전단금지 입법에도
김여정 막말은 여전하고
되레 한미관계에 악영향
[구본영 칼럼] 특등 머저리 vs 쓸모 있는 바보들
새해 들어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다. 코로나19 탓은 아니다. 북한은 통일부의 남북 간 방역 대화,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의 비대면 대화 제안에도 묵묵부답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최근 아예 대화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노동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정밀추적했다'는 남측을 향해 "특등 머저리들"이라고 비난하면서다.

북측의 막말이 새삼스럽진 않다.
문 대통령이나 방북 기업인을 겨냥해 "삶은 소대가리"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는 등 몽니를 부린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이번 김여정의 무례한 발언에도 늘 그랬듯이 어떤 복선이 깔려있을 법하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전체 맥락에서 보면 좀 더 과감하게 대화하자는 속내"라고 봤다. 그러나 선뜻 와닿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은 이번 당대회에서 핵추진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다탄두(MRIV) 전략무기 개발까지 공식화했다. 다분히 바이든 정부 출범에 앞선 대미 시위였다. 외려 핵보유국 지위로 미국과 통 큰 거래를 할 테니 "남조선은 빠져라"라는 의도가 읽히는 근거다.

'김여정 변수'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정 박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북한인권예산 삭감, 탈북자단체 홀대 등과 함께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을 꼭 찍어 '한국 민주주의의 훼손'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전단지 풍선에 북이 총을 쏘면 접경지역 주민이 위험하다"며 입법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전임 정부들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배치된다며 입법은 자제했다. 필요시 가스안전법 등으로 단속했을 뿐이다. 미 하원 초당적 기구의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앞두고 현 정부도 뒤늦게 심상찮은 기류를 인식한 듯하다. 주미대사관 주도로 거물 로비스트를 선임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독일 통일 전 동독인들의 탈출이 이어지자 동독 사회주의 정부는 1961년 베를린장벽을 설치했다. 그러자 햇볕론자인 당시 빌리 브란트 서베를린 시장이 앞장서 동독 정권의 반인권성을 규탄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도 현장을 찾아 "나도 독일 시민이다"라며 힘을 실었다. 인권은 문명국의 보편적 가치임을 일깨우는 삽화다.

전단금지법이 제3국을 통한 USB, CD 등 정보물품의 허가 없는 대북반출도 일절 금지한 건 더 심각한 문제다. 김일성대에서 수학한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국민대)의 지적이 통렬하다. 즉 "단기적으로 긴장 고조를 피하는 길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북한 민중의 생활개선도, 평화공존도 어렵게 만드는 법"이라고 했다. 전단금지법이 북한 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었다.

옛 소련의 레닌이 서유럽의 얼치기 진보 인사들을 조롱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폐쇄적 사회주의 경제에 박수를 쳤던 그들을 '쓸모 있는 바보들'로 부르면서다. 반면 작가 조지 오웰은 뼛속 깊이 좌파였지만, 소비에트 체제의 반인권성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간파했다.
그래서 진실을 향한 지적 성실성과 함께 스탈린체제를 소설 '동물농장'으로 고발했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86 실세' 대북정책 이데올르그들이 곱씹어봐야 할 우화일 듯싶다.
호의만 베풀면 북한 세습체제가 민주적·인도적 체제로 변화하리라는 기대가 허물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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