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 한국 소비자에게 의무가 없다고?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02 18:00

수정 2021.02.02 18:00

[이구순의 느린 걸음] 넷플릭스, 한국 소비자에게 의무가 없다고?
"넷플릭스의 의무는 일본과 홍콩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이용 가능한 상태로 두는 것까지다." 국내 통신회사와 통신망 대가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넷플릭스의 법률대리인이 한국 법정에서 던진 말이다.

분쟁 내용을 이해하면서 해석해 보면 넷플릭스는 한국 소비자에게 화질보장 같은 의무가 없다는 말이 되는데, 울컥 배신감이 든다.

10여년 만에 집안에 대형TV 한 대를 새로 들였다. 내친김에 넷플릭스 멤버십도 최고등급으로 올렸다. 매달 꼬박꼬박 1만4500원을 내는 것이 부담이긴 하지만, 극장에 자주 가기도 어려운 시대에 대형TV로 최고화질 영화를 즐기겠다는 기대가 컸던 터라 그냥 질렀다.


넷플릭스가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는 대한민국에 제공하는 멤버십 등급은 3가지다. 월 9500원짜리 베이직 등급은 HD화질과 UHD화질을 제공하지 않고, 1만2000원짜리 스탠다드 등급은 HD화질을 제공한다. 1만4500원을 받는 프리미엄 등급은 UHD화질을 제공한다고 돼 있다. 넷플릭스가 프리미엄 고객에게는 UHD 동영상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믿고 나는 넷플릭스의 프리미엄 소비자가 됐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법정에서 자신의 의무는 일본과 홍콩의 서버로 콘텐츠를 옮겨 놓는 것까지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정작 한국 소비자가 한국 내에서 어떤 화질의 콘텐츠를 이용하는지는 넷플릭스의 의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달 1만4500원을 내면 UHD화질 영화를 제공하겠다고 했던 넷플릭스의 약속은 뭐지? 나는 넷플릭스와 계약하고 매달 돈을 내는데, 나는 넷플릭스의 고객이긴 한 건가?

울컥 배신감이 든다.

사실 넷플릭스의 책임 선 긋기는 앞뒤가 안 맞는다. HD, UHD 같은 고화질 콘텐츠를 인터넷망으로 보려면 콘텐츠 제작-통신망 속도-TV 같은 단말기 품질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구현된다. 영화를 UHD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단말기가 UHD를 받쳐주지 못하거나, 통신망 속도가 느리면 UHD화질 영화를 볼 수 없는 게 인터넷 동영상이다.

그러니 넷플릭스가 소비자에게 UHD 동영상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그 3박자를 맞춰 완성된 모양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고객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완성된 서비스의 모양새에는 자신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넷플릭스의 주장을 고객에게 받아들이라고 하면 고객은 당연히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넷플릭스는 지난해부터 한국 통신회사와 통신망 사용대가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통신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누구와 왜 소송을 벌이는지 넷플릭스 고객은 알 바 아니다.
고객이 알 바는 넷플릭스가 멤버십 가입을 안내하면서 약속한 내용이다. 프리미엄 가입자로 매달 돈을 지불하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약이 고객의 알 바다.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가 자신의 서비스 품질에 남 탓을 들이대며, 고객을 이른바 '호갱'으로 만드는 일은 그만뒀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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