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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가 먼저다

이설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08 18:00

수정 2021.02.08 18:00

[테헤란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가 먼저다
#1. 올해 들어 비트코인(BTC)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목격한 A씨는 뒤늦게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올해부터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포함시킨 새로운 법률도 시행된다는 얘기를 들어 안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래소가 불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투자한 자금을 보호하거나 회수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당장 투자금을 회수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2. 모 가상자산거래소는 자전거래 등으로 1000억원대 시세조작을 했다며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또 다른 거래소는 허위로 가상자산 잔고를 시스템에 입력해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조작해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음달부터 개정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특금법)'이 시행된다.
개정 특금법은 가상자산을 처음으로 제도권에 편입시킨 법률이다. 가상자산 사업을 하려면 자금세탁방지 등 의무를 지켜야 하고, 기준을 만족해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또 세법 개정에 따라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수익이 250만원 이상일 경우 내년부터는 20%의 소득세도 내야 한다.

지금까지 그냥 사업을 하던 가상자산거래소들은 각종 기준을 갖춰 정부에 신고를 해야 하니 사실상 허가나 다름없다. 투자자들은 다른 금융상품처럼 소득세도 내게 된다. 가상자산 시장을 구성하는 사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의무가 부과되는데, 정작 시장을 보호하는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현행 법에서는 물론이고 개정 특금법과 개정 세법이 시행된다 해도 가상자산 투자자가 보호받을 방법은 없다. 일부 거래소가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어 피해를 보는 거래소들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가상자산 산업을 금융투자 시장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금법에 가상자산 관련 조문이 들어가면서 업계는 '제도권 편입'이라고 환영했지만 당국은 끝내 '제도권 편입은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투자자와 시장을 보호도 못해주면서 의무는 다하고 세금은 많이 내라니 이쯤되면 그냥 가상자산 시장에 발을 내딛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러기엔 이미 시장 규모가 너무 크다. 가상자산 공시 전문서비스 쟁글에 따르면 2019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국내 온라인 거래 수신량은 2200억달러로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투자가치가 확대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단순히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와 자본환경이 유사한 미국의 경우 최근 가상자산 전문은행이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고, 은행의 가상자산 수탁이 허용되는 등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통한 결제도 가능하다. 가상자산이 산업의 틀 속으로 들어가 혁신을 도모하고, 새로운 성장을 일굴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틀어막기만 할 뿐 아무런 준비가 없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불법행위는 뭔지, 불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어떤 처벌을 받을지, 투자자는 어떻게 보호할지,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한 발전방안 등 광범위한 논의가 시급하다.

이런 가운데 관련 법안의 발의가 반갑다. 이주환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1월 가상자산 시세조종행위 등 불공정거래를 철퇴하기 위한 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가상자산 투자자도 국민이다.
그렇다면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ronia@fnnews.com 이설영 정보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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