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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231년 노포 문닫는 날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09 18:00

수정 2021.02.09 18:04

[재팬 톡] 231년 노포 문닫는 날
오래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겨울, '촌스럽게도' 도쿄타워에 올라가보겠다고 구글맵에 의존해 길 찾기를 하던 중이었다.

가로수와 어우러진 빅토리아풍 붉은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을 각색해보면 창 너머로 우아한 샹들리에가 빛났고, 그 안의 사람들이 웃음 띤 얼굴로 식사를 했다.

당시 주머니 사정이 궁했던 나는 '비싸겠지. 돈 많이 벌면 가자'면서 소박한 꿈을 그리며 지나쳤었다.

미슐랭 가이드의 단골 손님이었던 이 비싸고 우아한 식당은 도쿄타워가 건설 중이던 1957년 문을 열었다.
일본의 고도성장기 도쿄타워를 바라보면서 비즈니스맨들, 부유한 가족 손님, 특별한 날을 즐기고 싶어하는 연인들이 숱하게 찾았을 것이다.

최근 또다시 그 앞을 우연히 지날 일이 있었는데 굳게 문이 닫혀 있었고, 한 장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창업 63년 만에 폐점을 알리는 글이었다.

"지금 스태프들(점원들)은 후련한 마음입니다.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넘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경영난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나, 우아한 고별사로 마지막 순간을 대신했다. 폐점 안내문이 붙기 불과 두어달 전 식당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코로나19 비말 방지 투명패널을 설치하고, 신메뉴를 선보이겠다고 의욕을 보였던 식당이 갑작스럽게 폐점을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 도산 물결'에 결국 휩쓸려갔다고들 한다.

성대하게 '폐점식'을 치른 곳도 있다. 일본 근대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즐겨 찾았다고 하는, 231년 역사(1790년 창업)의 일본 전통식당이다. 8대째 가업을 이어온 사장은 직원 50여명을 거느려야 하는데 코로나 타격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울먹였고, 어려서부터 이곳을 찾았던 손님들도 함께 울먹였다. 이 사연이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갑자기 몰려들었고, 당초 이 업체가 예정한 영업 마지막 날인 1월 31일까지 만석이 됐다. 막판에는 아예 전화조차 연결되지 않을 정도로 성업이었다.

반전은 없었다. 고집스럽게 버텨온 231년 역사도 함께 사라졌다. 당장 직원들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면 도리가 없다. 직원들에게 월급이라도 제때 지급해야 한다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정리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50년 이상 된 점포, 법인의 도산이 202건이었다고 한다. 오래된 노포를 포함한 전체 휴·폐업건은 지난해 연간 약 5만건에 달한다. 이들 기업의 종업원 수는 12만6500여명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자신들만의 고집을 선보였던 오래된 풍경들이 계속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라지는 것은 서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섰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코로나 방역 앞에서는 다소 냉정하게 치부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돈풀기에는 반대해왔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우선 살리고 보는 게 급선무 아닌가 싶다.

서울로 돌아갈 때쯤, 선후배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가게들이 제법 많이 사라져 있을 것 같다.
지금 도쿄의 풍경처럼 말이다. 비록 전통의 노포들은 아닐지라도, 골목골목 촌스러운 기억을 간직했던 곳들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까.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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