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3중 덫에 걸린 탈원전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15 18:00

수정 2021.02.15 18:28

신재생전력 기대치 밑돌고
월성 1호기는 의혹투성이
이념 대신 과학으로 풀어야
[구본영 칼럼] 3중 덫에 걸린 탈원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삐걱거리고 있다. 파열음이 곳곳에서 요란하다.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수사선상에 오른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료 폐기 소동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북한 원전지원 논란으로 불길이 옮겨붙어 야권과 청와대가 "이적 행위"니 "북풍 공작"이니 하며 험한 말을 주고받았다.

어찌 보면 임기 말 딜레마에 빠진 느낌이다.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그 대안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기대치를 크게 밑돌면서다.
최근 공개된 전력거래소의 '피크 시간대 발전원별 발전량 및 비중' 자료가 그 단면도다. 지난해 혹서기인 7월 1~31일 태양광 발전 비중은 0.8%에 불과했다. 동절기인 최근 1월 1~14일엔 0.4%로 더 떨어졌다. 같은 기간 원자력은 19.0%와 20.1%였다. 재생에너지 진흥에 '올인'했지만 원전 의존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눈·비 등 날씨에 좌우되는 태양광 발전의 본원적 한계를 가리킨다. 앞서 언급한 자료를 다시 살펴보자. 지난해와 올해 전력 피크타임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은 44.8%와 40.1%로 되레 높아졌다. 이 수치는 태양광과 풍력이 나쁜 기상으로 공칠 때 그만큼 LNG 발전소를 더 돌렸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전력 소비자인 국민과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비싼 LNG 발전 단가 탓에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해지면서다. 산업부와 한전은 지난해 말 원가연계형 요금체계를 도입했다. 더욱이 석탄에 비해선 적지만 LNG도 많은 탄소를 내뿜는다는 게 문제다. 현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과 탈원전은 결과적으로 상극의 어젠다인 셈이다.

각종 '탈원전 청구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탈원전 총대를 멘 한국수력원자력과 산업부 등이 처한 작금의 곤경이 그렇게 보인다. 2조원 넘는 손실을 끼친 '월성1호기 조기폐쇄'라는 무리수를 떠맡으려다 경제성 평가자료 조작이라는 더 큰 무리수를 두게 됐다면 말이다.

최근 북한 원전 지원 의혹이 불거져 혹 하나가 추가됐다. 북에 건넨 USB엔 원전의 '원'자도 없다는 정부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치자. 청와대의 하명이 있었든, 산업부가 알아서 만들었든 '북한 원전지원 보고서'의 존재 자체는 사실이 아닌가.

보고서의 3가지 검토 안 중 함경남도 신포에 한국산 원전 APR1400을 짓는 게 1안이고, 2안은 수출형 신규 노형을 비무장지대에 건설하는 안이다. 3안은 중단한 울진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북으로 송전하는 안이다. 1, 2안은 정부 스스로 실토했듯 북한 비핵화가 안 되면 불가능하다. 그나마 3안이 현실성이 있다. 다만 탈원전하겠다는 정부가 남의 원전 전기를 북으로 보내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이로써 장차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카드만 잃을 판이다. 이미 전력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데다 한국형 원전 해외 세일즈도 차질을 빚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이 같은 '탈원전 트릴레마'(3중고)에서 벗어나려면 빗나간 국정 궤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줄곧 "4세대 원전만큼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발전원은 없다"면서 원전-재생에너지 병행론을 설파 중이다.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이 풍부한 산유국 영국이 왜 한국형 원전에 관심을 두겠나. 혹여 과학이 아닌 이념에 치우쳐 과속 탈원전이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풀고 다시 채울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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