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정부, 가상자산 정의 다시 내놔야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16 18:03

수정 2021.02.16 18:03

[이구순의 느린 걸음] 정부, 가상자산 정의 다시 내놔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뉴욕멜론은행(BNY 멜론)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을 취급해 고객들에게 가상자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캐나다 금융당국은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운용자산이 8조8600억달러(약 98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비트코인 선물에 직접투자하는 것은 물론 비트코인을 '투자 적격' 자산으로 추천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모간스탠리도 자회사를 통해 비트코인 투자를 검토하고 있단다.

글로벌 신용카드사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는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신용카드 사용자가 음식점이나 쇼핑몰 등 가맹점에서 결제할 때 비트코인(BTC) 같은 가상자산으로 결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조700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투자를 결정한 것은 물론 앞으로 자동차 값을 비트코인으로 받겠다고 한다. 며칠 새 쏟아진 가상자산 시장 뉴스다. 세계 최고,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전통의 기업들이 앞다퉈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가상자산)는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둔 거래대상이 아니며, 산업자본화해야 할 자금이 가상화폐로 빠져나가고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가상화폐 거래가 대단히 위험하고 버블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것이 기본적인 정부의 입장"이라고 단언했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온 지 3년이 됐다. 3년간 정부가 가상자산 근처에는 발도 못 들이게 기업과 투자자들의 발을 묶어놓은 사이 세계시장은 변했다. 가상자산을 주류 금융상품으로, 일상생활의 결제수단으로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버블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비트코인 가치는 2018년 1만달러에서 3년 새 5만달러 코앞까지 왔다.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비트코인을 취급하지 않는 월스트리트 금융기업은 경쟁사에 고객을 빼앗길 위험이 높아졌다"고까지 진단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가상자산 사업 진출에 국내 기업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가상자산을 활용한 새 상품을 만들어 글로벌 경쟁에 끼고 싶지만 금융당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테슬라나 마이크로스트래티지처럼 비트코인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3년 전 정부의 방침 때문에 속만 끓이고 있다. 2018년 정부의 가상자산 금지정책에 비트코인 투자를 포기한 투자자들은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부가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정부는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정부의 눈치를 살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정책을 제시해주는 것이 의무 아닐까 싶다. 3년 전 부처 간 협의도 없이 던져놓은 '가상자산 금지' 정책이 지금도 유효한지 여부라도 확인해줘야 한다.
정부가 글로벌 흐름을 감안해 가상자산 사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줘야 할 때다. cafe9@fnnews.com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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