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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산책 귀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17 18:00

수정 2021.02.17 18:04

17일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강원도 고성군 민통선 북방에서 3시간만에 신병을 확보한 북한 남성이 헤엄을 쳐 귀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사진=뉴스1
17일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강원도 고성군 민통선 북방에서 3시간만에 신병을 확보한 북한 남성이 헤엄을 쳐 귀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사진=뉴스1
16일 새벽 북한 남성이 강원도 고성군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에서 붙잡혔다. 군이 검문소 CCTV에서 식별한 후 해안을 '거니는' 그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단다. 전방 경계태세에 큰 구멍이 난 셈이다. 군 당국이 17일 그의 귀순 사실을 확인했다지만 '산책 귀순'이라는 희화적인 신조어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러잖아도 사건 현장은 경계 취약지역으로 꼽힌다.

육군 22사단이 경계를 맡는 해당 지역에서 2012년 '노크 귀순', 2020년 '월책 귀순' 등 황당한 사태가 거듭 발생하면서다. 지난해 11월 탈북 남성이 기계체조 선수처럼 철책을 가뿐히 넘어 귀순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군이었다. 이번에 석 달도 안 돼 어민용 '머구리 잠수복'을 입어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탈북자에게 다시 뚫렸다. 그러니 "양말 구멍도 이렇게 자주 뚫리진 않는다"(무소속 윤상현 의원)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혹여 이번 사태가 우리 내부의 '무장해제' 기류를 반영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정상회담과 9·19 남북군사합의 등 일련의 평화 이벤트를 벌이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장병들의 안보의식도 흐릿해졌다면 말이다. 2018년에 이어 2020년 국방백서에서도 북한은 주적이라는 개념을 삭제할 정도라면 그저 기우만은 아닐 듯싶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하면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월등한 재래식 감시장비를 갖고도 경계에 허점이 노출된 터라 핵·미사일 등 북한이 우세한 비대칭전력이 더 걱정스럽다.


지난달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임기 내 전시작전권 환수를 희망하는 문재인정부를 겨냥, "(전작권 조기 전환은) 우리의 병력과 인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했다. '준비가 덜 된' 한국에 전작권을 넘겨주면 한국 내 자국민의 안위를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남북 대화의 불씨도 살려나가야겠지만, 안보를 소홀히 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