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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들, 앞다퉈 인플레이션 헤지 나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1 06:51

수정 2021.02.21 06:51

[파이낸셜뉴스]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구리 가격이 올해 톤당 8400달러를 넘어서며 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 중국 상하이에서 한 인부가 구리 음극관들을 옮기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구리 가격이 올해 톤당 8400달러를 넘어서며 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 중국 상하이에서 한 인부가 구리 음극관들을 옮기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전세계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이 앞다퉈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대비해 헤지에 나서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과거 높은 인플레이션 기간 주식과 채권의 실질 수익률이 심각히 타격을 받은데 따른 것이다.
지난 10년 인플레이션이 잠잠했던 터라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는 거의 실종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다시 부활 시동을 걸고 있다.

인플레이션 조짐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예고하는 조짐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을 가리키는 지표들 속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1조9000억달러 대규모 추가 경기부양안을 강행할 의지를 보이고 있고,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사상유례 없는 통화발행에 나선 상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충격을 완화하려는 재정·통화정책 대응이 시장에 대규모 통화증발을 불러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해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등 연준 고위 관계자들이 몇달 정도 물가가 뛸 수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은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없다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하고 있지만 시장에는 통 먹혀들지 않고 있다.

"고객들, 인플레이션 대비 요구 거세"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은 고객들로부터 인플레이션에 대비하라는 압박에 몰려 결국 앞다퉈 포트폴리오 안에 인플레이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자산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런던 상장지수펀드(ETF) 업체인 태뷸라의 마이클 존 리틀 최고경영자(CEO)는 "기관투자가들 사이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팬데믹을 거쳐 경제가 올해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물가가 뛸 것이란 전망은 일찍부터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선진국 경제의 연평균 인플레이션이 2020년 0.8%에서 2021년 1.6%로 2배 폭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티그룹도 전세계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연평균 2%에서 올해 2.3%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들썩
최근 원자재 가격이 들썩이는 것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지난해 4월 배럴당 20달러 수준이던 것이 지금은 60달러가 넘는다. JP모간체이스는 브렌트 유가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찍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 핵심 기초 소재인 구리 가격도 심상찮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정정불안 등이 겹쳐 광산 가동이 일부 중단돼 공급이 달리는 가운데 경기회복세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 가격은 톤당 8400달러를 넘어 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가격 붕괴 뒤 70% 넘게 폭등했다.

기관보다 개인투자자들 우려가 심해
슈로더의 유럽 다중자산 투자 부문 책임자 우고 몬트루치오는 운용자산 규모 5260억파운드의 영국 기관투자를 비롯해 고객사들이 인플레이션에 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몬트루치오는 "대형 기관 고객사들의 마음에 인플레이션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면서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보다 더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따라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상품(원자재), 미 금융주, 단기 국채 등의 포트폴리오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들, 6.6조달러 투입
각국 중앙은행은 그러나 지금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가 하방위험에 더 노출돼 있어 경기회복세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지금의 부양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런던 컨설팅업체 크로스보더 캐피털에 따르면 팬데믹이 전세계를 강타한 지난해 3월 이후 지금까지 각국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푼 돈은 모두 6조6000억달러에 이른다.

이 규모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양적완화(QE) 정책을 지속하면서 앞으로 5조8000억달러가 더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크로스보더의 마이클 하월 최고경영자(CEO)는 "중앙은행들은 필요할 경우 지금의 기조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즉각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인플레이션 용인할 것"
컨설팅업체 머서의 자산배분 책임자 로퍼트 왓슨은 각국 정부가 팬데믹 충격을 딛고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 가속화를 용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왓슨은 "세계 경제는 대규모 재정·통화 정책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5% 수준까지 치솟지는 않겠지만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전체 포트폴리오의 인플레이션 민감도를 점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여러 경우에 대비토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상찮은 미 인플레이션
미 인플레이션 조짐은 심상찮다.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율기준으로 1월 1.4%에 불과했지만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세가 소비자들 사이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이고 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 조사에서 미 소비자들은 미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1년 안에 3.3%가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화하면 2014년 이후 7년만에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이 된다.

미 소매매출도 1월 5.3% 대폭 늘엇다.

"인플레이션, 주가에 긍정적일 수도"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대비에 나서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운용자산 규모 세계 3위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글로벌 부 최고투자책임자(CIO) 로리 헤이넬은 시장의 우려는 과장됐다고 단언했다.

그는 올들어 투자자 미팅에서 고객들이 매번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렇게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헤이넬은 "고객들이 가장 크게 의문을 갖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주식시장이 하강할지 여부였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경제활동 강세에 따른 완만한 인플레이션 상승은 주식시장에 긍정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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