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괴롭힘 호소하며 목숨 끊은 캐디··· '특고' 직장내괴롭힘 첫 인정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1 16:00

수정 2021.02.21 16:00

노동청 캐디 사망사건 괴롭힘 인정 결론
골프장 근무 중 지난해 사망
사내 괴롭힘 호소, 골프장 대처는 미흡
유족 1인 시위하자 경찰에 신고까지
[파이낸셜뉴스] 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한 골프장의 캐디가 직장내괴롭힘을 당했다는 노동청 판단이 나왔다. 노동청은 골프장에 사건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조치, 혹여 더 있을지 모를 괴롭힘에 대한 실태조사를 권고했다. 직접고용이 아닌 하도급 형태로 계약하는 특수고용직 업종에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된 첫 사례다.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캐디의 사망 사건에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된다는 노동청 결정이 나왔다.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었던 특고 직종에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첫 사례로 주목된다. fnDB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캐디의 사망 사건에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된다는 노동청 결정이 나왔다.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었던 특고 직종에서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첫 사례로 주목된다. fnDB

■'괴롭힘 호소' 극단적 선택 골프장 캐디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고양지청이 S골프장 캐디로 일하다 사망한 고(故) 배모씨 사건이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접수된 진정사건을 조사해온 노동청은 “고인이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고,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판단했다.

노동청은 해당 골프장 측에 진상조사 및 그에 따른 조치, 직장내괴롭힘실태 조사를 권고했다. 이에 더해 재발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직장내괴롭힘 예방체계를 구축하고 취업규칙도 개정해 새로 신고하도록 시정지시했다.

사망한 배씨는 2017년 해당 골프장에 캐디로 처음 입사해 1년 간 근무하다 퇴사했다. 이후 2019년 7월 재입사해 지난해 9월까지 근무했다.

배씨는 사망 보름 전인 8월말 골프장 직원 온라인 게시판에 ‘캡틴님께’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게시했다. 당시 게시글엔 부당함을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글은 20여분 만에 관리자에 의해 삭제됐다. 작성자인 배씨도 게시판에서 강퇴조치됐다.

배씨는 보름만인 지난해 9월 한 모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며 자살로 결론 내렸다.

유족은 배씨가 생전에 쓴 일기와 동료 및 가족들에게 보낸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배씨가 골프장에서 캐디를 관리하는 ‘캡틴’ 직급의 관리자에게 지속적인 직장내괴롭힘에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배씨 사망사건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진 뒤 골프 커뮤니티에선 배씨가 지목한 관리자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이들의 증언이 쏟아지기도 했다.

유족 측은 “동생이 떠나고 연락 한 번 없다가 시의원님이랑 시민단체랑 같이 가서 1인 시위를 하니까 그제야 대화하자고 하더라”며 “그런 대화는 거부하고 법으로 보장된 권리에 따라 1인 시위를 하니 업무방해로 경찰을 불러 신고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캐디를 관리하는 가해자가 그때 당시 계약직 만료시점이었는데 정규직이 됐다”며 “골프장은 자체조사를 한다며 캐디들을 불러 제 동생 행적만 캐묻고 캡틴과의 관계는 질문하지 않았다는데, 관련 녹음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청의 직장내괴롭힘 판정이 나온 가운데 골프장 운영사 관계자가 유족과 나눈 문자메시지 대화. 유족 제공.
노동청의 직장내괴롭힘 판정이 나온 가운데 골프장 운영사 관계자가 유족과 나눈 문자메시지 대화. 유족 제공.

■'특고' 골프장 캐디, 직장내괴롭힘 첫 인정
해당 사건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직에게 직장내괴롭힘을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수고용직은 전속성이 인정됨에도 업체가 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대신 개인사업자로 도급 계약을 맺는 게 일반화된 직종을 일컫는 것이다. 사실상 전속계약에도 사업주가 책임을 면피하는 편법 형태로, 정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법을 개정해 특고에 대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골프장 캐디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 올해부터 사실상 의무화될 예정이다.

다만 배씨는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한다는 노동청 결정에도 산재 적용을 받기가 쉽지 않다. 골프장 측이 입사자에게 ‘산재적용제외 신청서’를 일괄 제출받아 법 적용을 회피해왔기 때문이다.
배씨 역시 지난해 7월 신청서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심준형 직장갑질 119 노무사는 “산재적용이 원칙이지만 이 사업장은 입사하면 일률적으로 제외신청서를 받았고 피해자도 서명해서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직장내괴롭힘으로 돌아가셨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돼 따져볼 수는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내괴롭힘을 법적으로 금지했으나 특고 등 특수신분 노동자에겐 적용되지 않아왔다.<div id='ad_body3' class='mbad_bottom' ></div> fnDB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직장내괴롭힘을 법적으로 금지했으나 특고 등 특수신분 노동자에겐 적용되지 않아왔다. fnDB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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