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46년 전 헤어진 여동생…빨리 찾지 못한 죄책감만"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2 13:03

수정 2021.02.22 15:22

[파이낸셜뉴스]
김경실씨(50·당시 4세)는 1975년 5월 1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실종됐다. 당시 신장 90cm, 몸무게 17kg로 눈동자에는 흰 점이 있고 이마가 넓은 점이 특징이다./사진=실종아동전문센터 제공
김경실씨(50·당시 4세)는 1975년 5월 1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실종됐다. 당시 신장 90cm, 몸무게 17kg로 눈동자에는 흰 점이 있고 이마가 넓은 점이 특징이다./사진=실종아동전문센터 제공

"내 힘으로 여동생을 못 찾았다는 슬픔에, 가슴이 턱 막혀요. 시간이 갈수록, 더 찾아보려고 더 시도를 해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깊어지네요."
46년 전 여동생과 헤어진 오빠의 목소리에는 '너무 늦게 찾아나섰다'는 후회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어려웠던 생활 속에서 미루기만 해 왔던 여동생 찾기에 나서면서, 오빠 김경호씨는 이제야 마음 속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22일 경찰청과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김경실씨(50·당시 4세)는 1975년 5월 1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자택에서 오빠와 헤어졌다.

경호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어머니와 떨어져 할머니, 아버지, 삼촌들과 살고 있던 김씨 남매 앞에 낯선 사람이 자가용에서 내렸다. 그가 "엄마를 보러 가자"며 경희씨를 데려갔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경호씨에게 "교회 장로가 (동생을) 잘 키울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후 경희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황망히 김씨 남매는 생이별을 해야 했다.

할머니에게 이따금 "공부 잘하고 있다" "이화여대에 갔다" 같은 말을 들었지만, 전해 듣기만 하는 소식을 경호씨가 믿기는 어려웠다. 여동생을 찾아나서려 해도, "괜히 찾아가면 여동생이 흔들린다"며 할머니가 연락을 막았다. 병상에 있던 아버지도 여동생과 이별 후 1년여만에 세상을 등져, 경호씨가 의지할 곳은 더욱 적었다.

경호씨는 성인이 된 후 막막한 마음에 무작정 해당 교회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는 "경비실에 찾아가 울면서 부탁하니 교회 직원이 장로의 집에 전화를 걸어줬다"며 "하지만 그 집에서는 '김경실씨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한숨만 지었다.

삶에 치여 마음 속에서만 여동생을 그리던 경호씨는 지난 2018년 12월 본격적으로 여동생 찾기에 나섰다.
그는 "자다가도 숨이 턱 막혀, 되도록 여동생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계속 찾았어야 하는데 그리워만 했다"며 짙은 회한을 전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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