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스쿨미투’ 10여년만에 일어난 기적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2 18:00

수정 2021.02.22 18:00

[기자수첩] ‘스쿨미투’ 10여년만에 일어난 기적
전국 '스쿨미투'의 도화선이 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건 관련 전직 국어교사가 최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년 만이다. 스쿨미투는 학교 내의 고질적 성희롱과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학생들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말한다.

피해자 중 한 명은 지난 19일 1심 재판부의 선고 직후 이를 '기적'이라고 했다. 당분간 재판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간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마음 졸이며 이날 선고를 기다려 온 듯 보였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전직 비서인 피해자를 둘러싼 2차 가해 등이 난무하던 시기에 1심 재판이 시작된 만큼 그 심정이 백번 이해됐다.

용화여고 스쿨미투 피해자 A씨는 "저도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스쿨미투를 신고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비방행위가 따라붙거나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건은 지난 2018년 교사들의 성폭력 의혹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나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해 묻힐 뻔했다. 이후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들이 검찰의 처분 결과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보완수사가 이뤄져 지난해 6월 첫 공판이 열렸다.

전직 교사 B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측이 주장하는 피해 사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B씨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먼저 와서 껴안거나 팔짱을 끼기도 한다"며 자연스럽게 신체접촉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결코 여제자의 치마 속에 손을 넣어 다리를 움켜쥐거나 볼을 깨무는 등 행위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실이) 절대 없다"고 말했다.

다만 B교사는 최후 변론에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고 교직생활에 임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요구되는 인권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했던 점을 인정한 셈이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는 인권 관련 수업 또는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여전히 '라떼는 말이야' 식으로 인권 감수성에 무딘 이들에 의한 성추행 또는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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