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수술실CCTV' 외면한 국회, 거리나선 유족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3 15:24

수정 2021.03.02 14:28

'권대희법' 공론화 이끈 이나금씨 국회 1인시위
20대 이어 21대 국회도 '수술실CCTV법' 발목
"모두 언젠가는 환자, 더민주 역할 해달라"
[파이낸셜뉴스] 환자 마취 뒤 집도의가 다른 수술실을 오가며 동시 수술을 하고, 집도의가 나간 뒤엔 경험이 일천한 의사가 수술을 이어받는 ‘공장식 유령수술’로 사망한 고 권대희씨 사건. 아들 사망 뒤 병원 CCTV를 수백 번 돌려보며 불법행위를 직접 입증한 모친 이나금씨가 국회 앞에서 다시 1인시위를 시작했다. 20대 국회에 CCTV법 통과를 촉구한 이후 1년만에 다시 시작한 1인시위다.

이씨는 최근 수술실CCTV 입법이 또 다시 좌절됐다는 보도를 보고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CCTV 입법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의원들에 대해 “주권의지를 배신하는 배임행위”라고 질타한지 사흘만이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16년 공장식 유령수술로 자식을 잃은 이나금씨가 국회 앞에서 수술실CCTV 설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호 기자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16년 공장식 유령수술로 자식을 잃은 이나금씨가 국회 앞에서 수술실CCTV 설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호 기자

■아들 잃은 어머니, 거리로 불러낸 국회
23일 오전 국회 앞에선 60대 여성 이나금씨가 제 몸만큼 큰 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시작했다. 팻말엔 ‘내 아들 권대희 수술 때 마취 뒤 의사 바꿔치기 CCTV가 잡았다’ ‘국회는 왜 막나 수술실CCTV’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이씨가 1인시위에 나선 건 지난주 국회 보건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환자보호 3법’ 중 하나로 큰 관심을 모았으나 소위 의원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부정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증언한다.

그간 더불어민주당을 믿고 기다려왔다는 이씨는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씨는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연결이 안 되고 답이 오지 않더라”며 “정 바쁘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는데 만나주지 않아 1인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본지가 김민석 의원실 관계자에게 연락해 이씨의 입장을 전했지만 “면담은 어렵다”는 답만 돌아왔다.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진행 중이라 좀 더 지켜보고 연락을 드리는 게 낫겠다고 내부적으로 얘기가 됐다”며 “일정 문제로 당장 만남은 어렵다”고 전했다.

이날 급히 주문해 맞췄다는 피켓을 들고서 국회 앞에 선 이씨는 수년 째 변한 게 없는 상황이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대희가 2016년에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수술한다는 의사는 절개만 하고 자리를 떴고 인턴도 안 한 초짜 의사가 들어왔다”며 “그 의사까지 나가고 지혈이 안 돼 피가 3500ml나 흐르는데도 나중엔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을 해 결국 죽게 됐다”며 울먹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서동일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서동일 기자

■여론 90% 찬성, 국회는 왜 외면하나
이씨가 국회에서 수술실CCTV 입법을 위한 1인시위를 한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활동을 이어온 이씨는 한파 속에서 1인시위를 하는 등 법안 공론화를 이끌어 관심을 모았다. 수술실CCTV를 통해 아들 사망의 진실을 밝힌 의료사고 유족으로, 다른 피해자들도 CCTV가 있어야만 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이씨가 활동하는 이유였다.

이에 당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접수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공동발의자 5명이 발의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당시 철회한 의원은 김진표·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동섭·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었다.

법안은 어렵사리 다시 발의됐으나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후 지난해 여당이 180석을 확보한 21대 국회가 개원하자 김남국, 안규백 의원이 각각 법안을 다시 발의했으나 몇 차례 논의에도 공전을 거듭하고 끝내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선 ‘사실상 폐기수순’이란 평가가 많았으나 최근 보도가 나간 뒤 재논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 법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한 데는 본지 보도를 인용해 수술실CCTV 입법을 강력히 촉구한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는 지난 20일 SNS를 통해 “국민의 뜻에 어긋나도록 설치를 외면하는 건 위임의 취지에 반하며 주권의지를 배신하는 배임행위”라며 “1380만 경기도민을 대표해 경기도민의 안전을 위해 국회의 적극적이고 전향적 노력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여론은 수술실CCTV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가 도민 대상으로 진행한 2차례 조사에서 응답자의 90% 내외가 수술실CCTV 설치와 촬영에 긍정답변을 내놨다.
국회 보건복지위가 지난해 말 진행한 자체조사에서도 찬성입장이 89%에 달했다.

■김민석 보건복지위원장은 보도 뒤인 2월 26일 권대희씨 유가족 이나금, 권태훈씨와 직접 만나 30여분 간 면담을 가졌습니다.
김 위원장에게 입장을 전달한 유족이 '1분 면담' 거절과 관련한 오해가 해소됐다고 전해와 기사에 반영합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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