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아닌 개인신념 인정 첫 판례
대법 "병역 거부에 진실성 갖춰 병역법 '정당한 사유'에 해당"
대법원이 '비폭력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수년간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대법 "병역 거부에 진실성 갖춰 병역법 '정당한 사유'에 해당"
이 남성은 과거 총기로 상대를 죽이는 1인칭 슈팅(FPS) 게임을 한 이력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이런 게임을 한 사정만으로 양심이 진실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비종교적 신념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될 수 있다고 본 첫 대법원 판단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차례에 걸쳐 예비군훈련, 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 훈련에 불참한 것은 사실이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 준비를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는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였다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A씨의 1심이 진행되던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4년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 입장을 견지해 온 종전 판례를 14년 만에 변경했다.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다만 이후에도 대법원은 양심에 반한다는 이유로 입영에 불응했더라도 병역거부에 대한 신념이 진실하지 않다면 병역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1심은 A씨의 예비군 훈련거부가 절박하고 진실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역시 "피고인은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기 위해 수년간의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형벌의 위험,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 등을 모두 감수하고 있다"며 "유죄로 판단되면 중한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점 등을 보면 피고인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는 사실이 소명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A씨의 혐의를 밝히고자 제출한 '카운터 스트라이크',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등 게임 이력 등 관련 증거에 대해서도 "어렸을 때 총기로 사람을 공격하는 게임을 한 적이 있으나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본 후 그만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이후 이 게임을 즐긴 사정은 찾을 수 없다"며 유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피고인이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사안에서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보아 예비군법과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이날 종교 등의 이유로 예비군훈련을 거부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법률 조항은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B씨 등이 향토예비군 설치법 제15조 제9항 제1호가 위헌이라고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사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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