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음악·공연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64년 전, 세계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뉴스1

입력 2021.03.04 12:01

수정 2021.03.05 11:12

스푸트니크 1호 모형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스푸트니크 1호 모형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모스크바우주 박물관에 전시 중인 반려견 라이카와 함께 소멸된 스푸트니크 2호 모형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모스크바우주 박물관에 전시 중인 반려견 라이카와 함께 소멸된 스푸트니크 2호 모형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20코페이카 짜리 소련 우표. 1957년 11월3일 스푸트니크 2호 발사성공 기념 우표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20코페이카 짜리 소련 우표. 1957년 11월3일 스푸트니크 2호 발사성공 기념 우표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장편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 표지
장편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 표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내가 즐겨 듣는 올드팝송 중의 하나가 '플라이 미 투 더 문'이다.

"Fly me to the moon

And let me play among stars

저 달로 날아가,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서 뛰어놀래요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Jupiter and Mars~

목성과 화성 위에서 지구의 봄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할래요~"

노랫말처럼 화성에서 지구의 봄을 구경할 날이 전혀 무망한 일이 아닌 게 됐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2021년도 상반기 최대 뉴스는 화성(Mars)이었다.

미국의 화성 착륙선 퍼서비어런스 호가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해 지구에 전송한 사진을 우리는 몇 번씩 보고 또 보았다. 실크로드의 관문인 돈황(燉煌)의 들판 같은 화성 표면. 지구와 가장 비슷하다는 화성에 과연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우리는 퍼서비어런스 탐사차보다 며칠 앞서 화성 관련 뉴스를 접했다.



"UAE 우주탐사선 '아말' 화성 궤도 진입 성공"

아랍에미리트(UAE)는 미국·러시아·유럽·인도에 이어 다섯 번째 화성 궤도 진입국이 되었다. 우주과학의 변방이던 중동의 소국 UAE가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던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축구대표팀과 월드컵 진출권을 놓고 대결을 벌이던 UAE가 이런 국가 비전을 갖고 움직이는 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아말은 시속 12만1000㎞ 속도로 7개월간 4억9350만㎞를 날아가 화성 궤도에 도착했다.

UAE는 화성 탐사를 구상한 지 6년 만에 선진국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이런 쾌거를 이뤄냈다. UAE는 2024년 달에 무인 탐사선을 쏘고, 2117년까지 화성 거주지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아말'은 아랍어로 희망이다. UAE 국민은 지금 미래에 대한 꿈으로 걸음이 경쾌할 것이다. UAE가 쏘아 올린 '아말'을 보면서 재차 러시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방역 당국이 러시아 코로나 백신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나온 직후 이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제 코로나 백신 이름은 '스푸트니크 V'.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름을 '스푸트니크 5호'라고 명명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러시아제 백신을 한국이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충격과 공황에 빠진 미국인들

그날은 1957년 10월 4일이었다. 이날 지구촌 사람들은 집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돌연 "삐삑, 삐이익~"하는 전자음을 들었다. 정체불명의 기분 나쁜 잡음이 몇 분 동안 계속 흘러나오자 당황했고 화가 치밀었다. 애꿎게 방송국이나 전자제품 수리점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원인 모를 전자음의 미스터리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소련(USSR)이 지구 궤도를 선회하는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상한 잡음은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을 날면서 관측한 내용을 부호화해서 소련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 인공위성이 스푸트니크(러시아어로 '여행의 동반자')였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미국과 자유 진영을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미국의 로켓 연구가들이 번번이 실패했던 인공위성을 공산국가 소련이 발사에 성공하다니!

1945년 이후 미국은 2차세계대전 승전국이자 세계 최강국으로서 풍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미국인은 교육, 산업, 과학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직경 57㎝, 무게 82.8kg에 달하는 소련제 금속구(球)! 대기에 관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전송할 수 있는 장치를 실은 스푸트니크! 880㎞ 높이의 궤도에서 96.2분마다 지구를 돌며 모든 대륙 모든 국가의 상공을 비행하는 인공위성!

한 달 뒤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이 인공위성에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실었다. 소련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명체를 지구 궤도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사람이 우주 공간에 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시그널! 미국인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미국인은 소련에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꼈다.

스푸트니크 충격 4개월 만인 1958년 1월, 미국은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익스플로러 1호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15분이 걸리는 궤도에 진입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우주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로켓 연구 기관을 하나로 통합해 NASA(미 항공우주국)를 출범시켰다. 1965년 프랑스가 소련과 미국의 뒤를 이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스푸트니크는 미국 내에 일대 각성을 일으켰다. 가난하고 낙후된 소련 체제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만큼 과학기술 인재들을 양성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학교육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치권의 합의로 교육기관에 대한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교육 부문은 방위비 다음으로 예산지원을 많이 받게 된다.

8세 소년의 '스푸트니크 충격'

유라시아 공산주의 세력과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 열도 역시 깊은 충격에 빠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52년 전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무릎을 꿇은 소련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다니!

오사카와 고베 사이의 한신칸에서 국어교사 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던 여덟 살 소년도 스푸트니크 사건을 TV와 신문을 통해 접했다. 여덟 살이면 많은 것을 기억할 때다. 소년은 반려견 라이카와 함께 지구 궤도를 선회하다가 소멸된 스푸트니크 2호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돌며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일본도 스푸트니크 충격을 받고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13년이 흘렀다. 그가 스물한 살 와세다대학 인문대 2학년이던 1970년 일본은 세계 네 번째로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대학을 마치고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남자는 1979년 소설가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1949~)다.

그가 데뷔 20년이 되는 1999년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고단샤에서 나온 이 소설의 제목은 '스푸트니크의 연인'(Sputnik Sweetheart). 하루키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소련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소환시켰다. 하루키 팬들은 작가의 상상력에 경탄했다.

일인칭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등장인물을 살펴본다.

나 : 주인공. 24세. 도쿄에서 대학을 나온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스미레를 사랑한다.

스미레 : 22세 여성. '나'와 같은 대학에 다니다 학교 분위기에 실망해 자퇴한다. 대학 2학년 때부터 키워온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습작 중이다.

뮤 : 39세. 한국 국적의 여성.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일본으로 와 가업인 무역회사를 운영하다가 남편과 동생에게 맡기고 와인 수입을 한다. 스미레가 사랑하는 대상이다.

여자친구 : 홍당무의 엄마이자 '나'와 관계를 갖는 여성.

홍당무 : '나'가 맡은 학급의 학생이자 '여자친구'의 아들.

작가는 어떻게 스푸트니크를 끄집어냈을까. 스미레와 뮤가 처음 만나는 설정인 스미레의 사촌언니의 결혼식장으로 가보자.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고 인사를 나누게 된다. 소설을 습작하던 스미레는 한창 비트 세대의 상징 작가인 잭 케루악(1922~1969)의 소설에 빠져 있었다. 스미레는 작가 잭 케루악을 화제로 삼는다. 잭 케루악을 이름만 들어 알고 있던 뮤는 잠시 혼동하여 이렇게 반문한다.

"케루악, 케루악……그 사람이 '스푸트니크'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닌가요?"

(중략) 뮤가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았다.

"비트니크, 스푸트니크……나는 그런 용어를 항상 잊어버려요. '겐무의 중흥'이다, '라팔로 조약'이다, 어쨌든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이를 계기로 스미레는 뮤를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라고 부른다.

소설에서도 1957년의 그 사건이 상세하게 기술된다.

'1957년 11월3일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어 이듬해 1월14일 소멸했으며, 무게는 508.3kg으로 개 한 마리와 자외선 측정 장치를 적재하고 있다···'

작가는 '뮤'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두 개의 위성이 그리는 궤도가 우연히 겹칠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도 있고, 어쩌면 마음을 풀어 합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깐의 일이고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 속에 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타버린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스푸트니크 충격이 일본인에게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루키는 작가가 되고 나서 소년 시절 받은 충격이 문득문득 생각났고, 언젠가 소설로 쓰겠다고 별렀던 것 같다.


화성 표면 사진과 러시아제 백신이 우주개발 시대를 연 1950년대의 세계를 소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