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고시원 주방서 성추행 당하자 그릇으로 가격..憲 "정당방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09 06:00

수정 2021.03.09 06:00

고시원 주방서 성추행 당하자 그릇으로 가격..憲 "정당방위”


[파이낸셜뉴스] 갑작스럽게 성추행을 당하자 들고 있던 사기그릇으로 가해자를 가격한 여성을 상해 혐의를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잘못된 것으로 취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형법상 정당방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위법성이 없음)될 여지가 상당한데도 검찰이 충분한 조사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여성 A씨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최근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기소유예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A씨는 2018년 10월 저녁 10시 30분께 고시원 주방에서 자신의 손목을 잡고 손으로 가슴 부위를 1회 움켜쥔 고시원 거주자 B씨를 향해 들고 있던 사기그릇을 휘둘러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입건됐다. B씨는 범행 직전 A씨가 고시원 내 여성용 공용욕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 욕실 전원을 끄는 등 공포심을 야기하는 행위를 반복한 데 이어 A씨가 고시원 내 주방으로 가는 것을 따라간 뒤 이같은 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기소됐고 징역 6월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A씨가 사기그릇을 휘둘러 B씨의 오른쪽 귀 부위가 찢어지는 상처를 내 상해를 가했다는 피의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A씨가 추행을 당하자 놀라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B씨의 상해 정도가 크지 않고 1회의 가격에 그친 점 등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형식상 불기소처분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소원을 통해 불복할 수 있다.

이에 A씨는 “두려움에 싸인 상태에서 B씨의 강제추행을 방어한 것에 불과하며, 적극적으로 공격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소유예처분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A씨는 폐쇄된 공간에서 갑자기 이춰진 추행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고 있던 사기그릇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상당한 범위 내에서 반격방어의 형태로 저항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며 “A씨의 방위행위는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충분하고 합당한 조사 없이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형법상 상해죄 또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거나 중대한 수사미진에 따른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며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