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나를 지독히도 태운 ‘나나’ 선배, 간호학과 교수가 됐다 [폭로의 재구성]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10 11:18

수정 2021.03.10 12:12

가래통 붓고, 어머니 욕까지...1년 간의 괴롭힘에 자살 생각도
명치, 등, 쇄골 가리지 않고 폭행 ...안 보이는 곳만 골라 때려
폭로 이후에도 강의 예정대로 진행..."예상했지만, 씁쓸하다"
간호사 사회에서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범죄 '태움'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 사진=fnDB
간호사 사회에서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범죄 '태움'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간호사 사회 대표적 악습인 이른바 ‘태움’을 일삼은 선배가 대학 강단에 섰다는 소식에 울분을 토한 폭로 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혹은 후배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범죄행위다. 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했지만 일부에선 여전히 뿌리 박혀있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네이트판에는 ‘9년 전 저를 태운 당시 7년차 간호사가 간호학과 교수님이 되셨대요(간호사 태움글)’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후 해당 글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여론의 눈이 쏠리자 작성자 A씨는 이어 7일 “가해자는 제가 누군지 알고 있으며, 기회가 있음에도 아직 사과 한 마디 없는 상태”라며 “그 어떤 금전적 보상도 원치 않으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추가 글을 작성했다. 8일에는 “(해당 선배가) 정상적으로 출근해 예정된 모든 수업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상은 했지만 씁쓸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첫 글의 A씨 주장을 재구성해보면, A씨는 2012년 6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약 13개월 간 C대학 병원 응급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신입들은 유난히 자신들을 괴롭히던 선생님들 이름 끝 글자를 따 ‘나나’, ‘미미’, ‘주주’로 칭했다. 이 중 ‘나나’의 괴롭힘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 인간이하의 만행. ‘나나’는 법정 감염병인 VRE 환자에게서 뽑은 가래통을 A씨에게 뒤집어씌웠다. 엑스레이 기계 앞에서 보호장비를 벗고 서있으라고 시키면서 “방사능 많이 맞아라~”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 폭행은 일상이었다. 한 개 들기도 벅찬 CRRT(24시간 투석기)를 2개 들지 않으면 때렸다. EKG포타블 기계(활력 징후나 심전도 등을 측정하는 기계)를 가져오랬다가, 도로 갔다 놓으랬다가 시키고 나서는 지친 기색이 보이면 또 때렸다.

“10분 전에 석션했냐”고 물어 “했다”고 대답하자 “거짓말 하지마”라고 하며 명치를 가격했다. 이 외에도 쇄골 아래 주먹질, 겨드랑이·옆구리 꼬집기, 등 팔꿈치로 때리기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 와중에도 유니폼을 입으면 드러나지 않는 부위만 골라 때렸다. 뭐라고 대답하든 결과는 폭행이었다.

또 “아 오늘도 너랑 데이(근무)냐”며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 A씨의 무릎 뒤(오금)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기도 했다. 환자 대변 쪽으로 고꾸라지게 민 날도 있었다.

#. 폭언의 수위가 달랐다. A씨가 맡고 있던 환자 3명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나나’는 “재수 없다, 네가 만지면 내 환자가 죽는다, 내 환자 죽이지 말고 벽보고 서있어라”고 윽박질렀다. 그 이후로 A씨만 보면 “오늘은 누구 죽이려 출근했냐”고 시비를 걸었다.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A씨의 어머니 욕도 했다. ‘나나’는 “네가 그렇게 재수 없는 X이라 네 XX가 아픈 거야”라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부었다. 그리고선 씨익 웃었다.

#. 외모비하도 다반사. A씨만 보면 “못 생겼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 식사도 마음대로 못 하게 했다. 하루는 A씨가 근무를 마친 후 동료들과 피자 가게를 갔다. B씨가 이 모습을 본 듯하다. 다음 날, ‘나나’는 “니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해, 어제 뭘 잘못했는지 말해, 내가 다 봤어”라며 “퇴근하자마자 피자를 먹어? 나 같으면 집 가서 책 한자라도 더 볼 텐데”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 대구 출신인 ‘나나’는 이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뽑으라고 강요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1년 넘는 기간에 걸친 이 같은 폭행·폭언으로 모욕과 수치심이 극에 달한 A씨는 어머니에게 모진 말도 했다. A씨는 “엄마가 우리 딸 대학병원 간호사라고 여기저기 말해놨는데 관두면 안 된다고 말리셔서 못 관뒀다”며 “그런데 그날 엄마한테 대학병원 다니다 자살한 딸 엄마 할래? 아니면 그냥 살아있는 백수 딸 엄마 할래?라고 심한 말을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 그 선생님(나나)이 결국 중환자실에서 오래오래 잘 계시다가 교수님이 되셨다는 소식에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참 허탈하다. 아직도 얻어맞은 기억, 환자에게서 나온 가래통을 제 머리에 쏟으셨던 날 집에서 샤워기 아래에 서서 몇 시간을 울며 머리를 몇 번이나 감았는지 모르실 것”이라고 전했다.


A씨는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링크를 첨부하며 “이 글이 간호업계 태움 문화 근절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간청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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