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원미·근중은 위험한 줄타기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15 18:13

수정 2021.03.15 18:13

文정부 친중 행보에도
中은 사드제재 안 풀어
쿼드 참여로 균형 잡길
[구본영 칼럼] 원미·근중은 위험한 줄타기
미국 신행정부의 중국 견제전략이 베일을 벗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등 공유가치를 토대로 한 동맹의 재결속이란 밑그림을 드러내면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전제정치와 민주주의의 변곡점에 있다"며 우방들의 대중 포위망 동참을 요구했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확대와 중국을 뺀 핵심 소재·부품 공급망 구축 방침은 그 실행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국 외교도 시험대에 올랐다. 전임 트럼프 정부와 180도 다른 바이든 정부의 대중 압박전술 탓이다.
전자는 일방적 관세폭탄 등 소리만 요란한 '선빵'에 치중하는 반면 후자는 동맹국과 스크럼을 짜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그간 미·중 사이에서 줄서기를 최대한 미루다 마침내 '진실의 순간'을 맞이한 격이다.

이는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 낀 나라들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경계한다) 외교술은 자강(自强)을 통해 스스로 제국이 된 로마를 빼면 반도국들의 생존 지혜였다.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우리가 초강대국 미·중 사이의 '줄타기 외교'를 무조건 백안시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균형 잃은 줄타기는 늘 위기가 따른다. 우리네 남사당패처럼 세계적으로 오래된 기예지만 삐끗하면 큰 사고로 연결되듯이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구한말 고종이 당시 세계 최강 영국의 적인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것은 최악의 줄타기였다. 영·일 동맹을 십분 활용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는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에 비해 친중 행보에 적극적이었다. 중국이 최대 교역 상대국인 터라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방중 시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라며 중국을 "큰 산봉우리"라고 치켜세운 건 과한 립서비스였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이 조공체제 등 중화 질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면 말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했지 않나.

임기 말 친중 외교의 손익계산서는 적자로 드러나고 있다.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안보주권을 일부 내주는 '3불(不)' 굴신에도 중국은 한한령을 풀지 않았다. 이달 초까지 193건의 중국 게임이 한국에 상륙했지만, 중국은 한국 게임에 고작 두 건의 판호(출시허가)를 내줬을 정도다. 방탄소년단(BTS) 공격이나 김치 원조논쟁도 인구 14억 시장을 무기로 한 '한국 길들이기' 성격을 띠고 있긴 마찬가지다.

애초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이 문 정부의 의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 그 의도가 읽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축하하자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러려고 우리가 피 흘려 한국을 지켰나"라고 했다. 성급한 외교적 줄타기의 위험도는 궤도 수정과 도킹 등 고난도 기술이 필수인 우주비행에 비견된다. 줄타기 실수는 곡예사가 목숨을 잃는 데 그치지만 곡예외교의 실패는 온 국민을 '우주미아'로 만들 수도 있다.


문재인정부도 균형 잃은 원미(遠美)·근중(近中) 노선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 주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는 적극성을 보이다가 쿼드 참여를 기피하는 등 동맹과는 거리를 두는 행보는 곤란하다.
자칫 미·중 모두로부터 방기돼 빚어질 최악의 외교참사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