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상식을 무너뜨린 아파트 공시가격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17 13:35

수정 2021.03.17 15:35

부동산과 전쟁 몰두하느라
인정사정 없이 밀어붙이기
객관적인 상황 파악에 실패
세금은 예측가능성이 필수
럭비공처럼 마구 튀면 곤란
상식선에서 정책 바로잡길

15일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세종시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년비 70.68% 올라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세종시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유리창에 아파트 매매 가격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15일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세종시의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년비 70.68% 올라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세종시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유리창에 아파트 매매 가격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공동주택(아파트·연립주택) 공시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심사가 불편한 이들이 많다. 좀 비싼 집에 사는 이들은 다 입이 나왔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은 전국 평균으로 작년보다 19% 넘게 올랐다. 세종은 71%에 가깝다. 서울도 20%에 육박한다. 경기도는 약 24%로 증가폭이 작년(2.7%)의 9배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의 출발점이다. 건강보험료, 기초생활보장 급여 등 복지비 지급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러니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일각에선 정부가 일부러 집값을 올려놓고 세금을 뜯어간다는 볼멘 소리가 들린다. 그럴 리야 있겠냐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워낙 하한가라 별소리가 다 나온다.

올해 공시가격은 납세자가 수용할 수 있는 상식을 깼다. 불만투성이 공시가격을 개선할 방안은 없을까.

가격공시제의 역사


감사원은 2020년 4월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아래 내용은 이 보고서를 주로 참고했다.

공시가격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89년 노태우정부 2년차 때다. 이때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처음 만들어졌다. 이로써 땅값을 산정할 때 통일된 기준이 마련됐다.

그 전엔 부처마다 땅값 산정이 다 달랐다. 건설부(현 국토부)는 기준지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는 과세시가표준액, 국세청은 기준시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는 감정시가를 구했다. 자연 세금도 들쭉날쭉했다. 같은 땅을 두고 여러 부처가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땅은 정리가 됐지만 집값은 여전히 부처마다 달랐다. 그러다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지가공시법을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꾸면서 집값에도 통일된 기준을 적용했다. 따라서 주택 가격공시제는 올해로 16년째를 맞은 셈이다.

2016년엔 긴 이름을 가진 위 법률이 부동산공시법과 감정평가법으로 나뉜다. 이번에 국토부가 발표한 아파트 공시가격은 바로 부동산공시법에 따른 것이다. 법에 따라 땅이든 집이든 해마다 공시가격을 발표한다.

자료=감사원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 보고서(2020년 4월).
자료=감사원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운용실태' 보고서(2020년 4월).

작년에 현실화율 로드맵 확정


법을 바꾼 건 아니지만 작년 11월 공시가격 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는 계획을 확정했다. 그러자면 해마다 연 3%포인트씩 높여야 한다. 공동주택은 10년에 걸쳐 69%(2020년)를 90%로 높인다는 로드맵을 내놨다. 단독주택은 15년에 걸쳐 53.6%를 90%로 높이고, 토지는 8년에 걸쳐 65.5%를 90%로 높이기로 했다.

현실화율은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을 말한다. 10억원짜리 아파트의 현실화율이 70%라면 공시가격은 7억원이다. 여기에 세금을 매긴다. 이건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따라서 현실화율을 90%로 높인다는 계획 자체엔 태클을 걸 여지가 없다.

그런데 다른 데서 문제가 터졌다. 시세가 이스트 먹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바람에 공시가격이 덩달아 폭등했다. 시세→공시가격→보유세 인상의 길을 밟은 셈이다. 사실 시세 오른 데 비하면 현실화율 제고분은 껌이다.

완충재가 있긴 하지만


정부도 세금폭탄 보완책을 내놨다. 재산세는 30%(공시가격 6억원 초과) 상한선을 두고, 종부세는 고령자(60세 이상)와 장기보유자(5년 이상)에게 20~40% 공제 혜택을 준다. 고령·장기보유를 합쳐서 받을 수 있는 공제 상한도 80%로 높였다.

그러나 이 정도론 턱도 없다. 공시가격 자체가 워낙 세게 올랐기 때문이다. 재산세가 작년보다 29% 오른 사람, 59세에 4년 보유자는 꼼짝없이 보유세를 다 내야 한다.

급매물이 나올까


공시가격 현실화는 조세의 형평성을 높인다는 명분이 있다. 진짜 속셈은 보유세 부담을 높여 집값 상승세를 저지하는 것이다. 종부세 대상자는 전국에 53만호, 서울에 41만호가 있다. 서울은 전체의 16%가 종부세 대상이다. 이들은 올해 세금을 적어도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사람들이 급매물을 내놓으면 집값 오름세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진짜 급매물이 시장에 나올까. 다주택자는 몇 채 내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채 밖에 없는 선량한 장기거주 집주인들은 선뜻 집을 팔지 못한다. 자칫 세입자가 세금 부담을 뒤집어 쓸 수 있다. 무거운 양도소득세도 부담이다. 집주인들이 1년만 꾹 참자며 버티기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내년 봄 새 정부가 출범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권이 바뀌면 부동산 정책이 후다닥 바뀐다는 걸 너무 잘 안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사진=뉴스1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사진=뉴스1

개선방안은 없을까


일에 너무 몰두하면 주관화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국토부 부동산 정책이 바로 그렇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니 그저 돌격 앞으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발 뒤로 물러서서 전황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준은 상식이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코로나로 안 그래도 우울한데 공시가격에 세금 생각하니 더 우울하다"는 글이 보인다. 정치권은 코로나로 지친 이들을 위로한다며 재난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선 세금폭탄을 떨어뜨린다. 이런 엇박자가 또 있을까.

종부세는 원래 부유세였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에겐 어지간히 살면 내야 하는 세금으로 변질됐다. 강남도 아닌 곳에 30평대 아파트에 살아도 종부세를 내게 생겼다. 올해 서울에선 41만가구, 16%가 종부세를 낸다. 이건 더이상 부유세가 아니다. 종부세 기준(1가구1주택 공시가격 9억원)을 올리는 게 상식에 맞다.

재산세·종부세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집값이 올랐지만 실제로 팔기 전까진 내 돈이 아니다. 그러나 세금은 당장 현찰로 내야 한다. 집값 오른 만큼 소득이 껑충 뛰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입이 안 나오겠는가. 세금은 예측가능성이 필수다. 그래야 미래 씀씀이를 설계한다. 그러나 올해 보유세는 럭비공처럼 튄다. 세금의 상식이 무너졌다.


근본적으로 올해 공시가격은 정부 정책 실패를 납세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꼴이다. 몰상식한 일이다.
LH 사태로 정신 없는 건 알지만 국토부가 상식 선에서 바로잡길 바란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상식을 무너뜨린 아파트 공시가격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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