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의해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받는 북한 사업가를 미국에 송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이는 북한 인사가 미국 내에서 미국법의 적용을 받아 법적 처벌을 받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북한 외무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던 북한 사업가 문철명씨는 지난 17일 미국으로 송환됐다. 지난 2019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신병 인도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약 1년 10개월여간의 말레이시아 당국의 사법 절차를 거쳐 최종 인도가 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
문씨가 받는 혐의는 대북제재에 위반하는 사치품을 북한에 보내고, 이른바 '돈세탁'을 통해 북한에 외화를 보낸 혐의로 알려졌다.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북한 국적의 인사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에서 법적 처벌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그간 북한의 사이버 부대 소속의 해커들을 기소한 적은 있지만 이들은 미국에 의해 신병이 확보된 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북제재의 이행이라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법적 절차를 밟는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고위 관료들을 제재 대상으로 올린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실질적으로 미국 혹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하지 않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제재는 실질적 조치로는 이행되기 어렵다.
민간 차원의 대북 소송도 있었다. 미국의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지난달 말 50여 년 전 북한이 억류, 납치한 미국의 군함 푸에블로호 사건에 대해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북한 당국이 푸에블로호 승조원의 가족과 유족 등 171명에게 23억 달러를 배상할 것을 결정한 것이다.
푸에블로호 승조원의 가족과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 북한은 '무시'로 일관했다. 재판도 '궐석 재판'으로 진행됐으며 북한 당국에 의한 실질적인 배상도 사실상 어렵다.
북한에 억류된 뒤 혼수상태로 귀국해 결국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가족도 미국 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북한은 재판에 임하지 않았다. 역시 재판은 '궐석'으로 진행됐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안은 중요한 전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 당국이 미국 법원에서 진행될 법적 절차에 공식적으로 응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변호인을 세워 문씨의 법적 절차에 임할 경우 북한이 미국 행정부의 대북제재 조치와 사법 시스템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다른 조치에 대해서도 법적 다툼이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는 모양새로 귀결될 수도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사안이 되는 것이다.
반면 문씨에 대해 진행될 법적 절차를 '무시'할 경우 자국민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져 인권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미국은 공식 수교국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향후 선택지를 택하는 데 있어 고민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문씨를 '민간인'으로 규정해 당국 차원에서 나서지 않고 문씨가 자체적으로 미국 내에서 자신을 위한 구명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사안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관측한다.
문씨에 대한 구체적인 혐의가 온전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법적 절차를 예단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미국이 문씨의 신병을 확보하게 된 만큼, 이 사안은 미국이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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