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아산 정주영 20주기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1 18:00

수정 2021.03.21 18:02

KBS가 지난주 방영한 '모던 코리아' 9번째 에피소드 '왕이 되려던 사나이' 편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전성기 모습이 등장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소떼 방북'이라는 20세기 최후의 장엄한 전위예술을 펼친 대북사업가의 정치 도전기가 주를 이뤘다.

그는 이 땅에 최초로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일으켰고, 아파트 건설 공화국의 신화를 세운 산업화의 주역이자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이다. 1981년에는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바덴바덴의 기적'을 일으켰다. '왕회장'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기업인이다. 그러나 '정치인 정주영'에겐 명과 암이 교차한다.
일생일대의 유일한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와 1년 남짓한 정치 인생에서 참담한 고배를 마셨다. 1992년 1월 정주영은 박정희·전두환은 물론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5억~100억원의 정치자금을 상납한 사실을 폭로했다.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경부고속도로 이층화, 아파트 반값 공급, 학생 무료급식 같은 파격적인 선거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국민들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외치던 국내 최대 재벌 회장에게 정치권력을 쥐여주지 않았다. 김영삼의 당선과 함께 '3김 시대'가 시작됐고, 통일국민당은 도산한 회사처럼 공중분해됐다. 절치부심하던 정주영은 1998년 서산농장에서 애지중지 키운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주영에게 상석을 내줬다. 정치실패를 보상받으면서 회생했다.

21일은 아산 정주영(1915~2001)이 세상을 떠난 지 20주기이다.
아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당대가 아니라 후대의 몫이다. 다만 다큐멘터리 속 빛바랜 영상물이 요즘 LH사태와 맞물려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
특히 아산이 10년 전 내놓은 반값 아파트의 실현 가능성을 곱씹어봤다. 역사에 가정법은 금물이지만 그때 아산이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