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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데이터가 농사짓는 시대, 서막이 올랐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1 18:00

수정 2021.03.21 18:02

허태웅
농촌진흥청장
[차관칼럼] 데이터가 농사짓는 시대, 서막이 올랐다
우리나라 농업 연구개발(R&D)을 주도하는 농촌진흥청장 입장에서 올해를 미리 규정하자면 '디지털 농업의 현장화'이다. 흔히 듣던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시대가 왔다. 급속한 기후변화가 농업의 근간을 흔들어 놓으며 기후위기 상황까지 내몰고 있다. 올해 3월 초 갑작스러운 폭설로 강원도 인삼 재배시설과 하우스가 무너졌다. 지난해 길고 지루한 장마로 토마토 생산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햄버거에서 토마토가 사라지는 사태도 겪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영세한 농지규모, 기후변화 등으로 위축된 농업 현장에서 미래 농업·농촌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 고심했다.
결국 농업·농촌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디지털농업의 성공적 추진과 안착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디지털농업이란 생산과 유통, 소비 등 농업과 관련된 전 과정의 데이터를 디지털 형식으로 수집하고 저장·관리·분석·공유해 최적의 의사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농사 짓던 시대는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농사는 데이터가 짓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머지않아 농업 현장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육종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유전력 정보에 기반한 예측과 분석으로 품질이 우수한 고추와 무, 토마토 육종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수년이 걸리는 신품종 육종기간을 절반가량 단축할 수가 있다.

우리보다 앞서 디지털농업에 뛰어든 네덜란드와 미국 등은 이미 상당 부분 농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룬 모범사례로 꼽힌다.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인 네덜란드는 다양한 과학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면서 농산물 생산의 효율성을 높여가고 있다. 토마토 주산지인 스페인을 따돌리고 세계 1위 토마토 생산국으로 도약한 일이나, 3.3㎡에서 양송이 800㎏을 생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온실 환경제어 시스템 회사로 인지도가 높은 프리바, 한국에 파프리카 온실을 보급하기도 한 홀티맥스 등 쟁쟁한 회사들이 알고 보면 네덜란드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농업용 사물인터넷 플랫폼 업체인 온팜과 농업용 데이터를 관리·분석하는 팜로그스 등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후나 토양, 작물의 상황, 농업기계 상태 등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해 경지 규모를 설정하고, 수익을 전망하며 효율적 영농 스케줄까지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설농업을 중심으로 편리성과 생산성 향상에만 집중해 왔다. 이제는 노지 작물 등 농업 전반에서 디지털농업으로 전환을 앞당길 때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디지털농업추진단을 구성하고 디지털농업으로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전국 10개 지역에서 식량, 원예, 축산을 아우르는 11개 품목(벼, 밀, 콩, 양파, 배추, 사과, 국화, 한우, 젖소, 돼지, 가금)을 정해 디지털 농업기술 현장실증을 추진할 계획이다. 드론을 이용해 씨를 뿌리고, 농약을 살포하는 기술, 위성을 활용해 재배면적과 작황을 분석하는 기술, 로봇착유기 실용화가 막연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리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 원인 중 하나가 생산여건 변화와 건강·웰빙 추구, 1인 가구 등 사회 트렌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데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디지털농업 혁신 과정에서 양질의 데이터가 유통과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면 새로운 기술혁신이 촉발될 수도 있다고 본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디지털농업이 우리 농업·농촌의 지형도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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