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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강간범” 소설이 아마존 베스트셀러?...심지어 실화로 둔갑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5 06:00

수정 2021.03.26 11:14

원제 <대나무 숲 저 멀리서>...국내 번역본 <요코이야기>
일본인 억울한 피해자로 세탁...한국인 가해자로 그려져 
사진=한국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제공
사진=한국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제공
[파이낸셜뉴스] 한국인을 성폭행 가해자로 낙인찍어놓은 일본계 작가의 소설이 아마존에서 버젓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채 팔리고 있어 한국 사이버외교사절단이 판매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에 나섰다.

25일 글로벌 청원 사이트 ‘change.org’를 살펴보면, 한국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지난 4일 ‘아마존은 소설 ‘대나무숲 저 멀리서(So Far from the Bamboo Grove)’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캠페인 동참 글을 올렸다. 이 청원은 이날 기준 1만1000개 넘는 서명을 얻었다.

한국인 강간·폭행 기술..“왜곡된 사실”
지난 2005년 ‘요코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 출판된 이 책은 11세 일본 소녀 요코가 세계 2차대전 일본의 패망 이후 함경북도 청진에서 원산, 서울,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살해와 강간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반크는 “요코이야기는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자전적 소설로, 일본의 패전 후 일본인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인들로부터 강간과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런 책이 아마존에서 폭력 관련 어린이 책 124위, 아시아 관련 어린이 책 447위, 군대 소설 관련 어린이 책 372위에 올라와있는 베스트셀러”라고 지적했다.

반크는 이 소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치하더라도, 왜곡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짚는다.
반크는 “이 책은 요코가 함경북도 나남 지역에 날아온 미국 B29(전략폭격기) 공습을 뒤로 하고 한밤중에 기차를 탔다고 묘사했다”며 “하지만 미군은 당시 한반도를 직접 폭격한 사실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요코가 성폭행을 피해 남자처럼 보이려 가슴을 싸매고 서서 소변을 봤다고 서술했지만, 이 역시 신빙성이 없다”며 “일제는 패망 후에도 한동안 한반도에서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다. 되레 해방을 반기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고 일갈했다.

아마존은 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실화'(빨간줄)라고 소개하고 있다. / 사진=아마존 홈페이지 갈무리
아마존은 소설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실화'(빨간줄)라고 소개하고 있다. / 사진=아마존 홈페이지 갈무리
소설인데 실화로 소개
더욱 큰 문제는 이 책 뒤표지의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는 글이 아마존 책 소개부분에 그대로 올라와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일본 판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며 실화 기반 소설임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치는 ‘한국인=가해자, 일본인=피해자’라는 등식을 미국 사회에 퍼뜨려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탁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반크 주장이다. 일제강점의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이 책을 보면 한국인을 전범 가해자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여아가 유대인으로부터 고난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실화로 유통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이 책은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도 “일본의 민낯을 전 세계에 알리고 역사왜곡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이런 악질적인 책을 판다고? 아마존 정신 차려라”, “역사수정주의에 빠진 망상가의 소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 같은 근거와 함께 반크는 “2020년 7월 25일 아마존은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백인우월주의 단체 깃발, KKK 등과 관련된 물품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에 따라 요코이야기 판매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필수교재 채택 고집하는 미국 주(州)들
이 책은 미국 학교에서 반전(反戰) 교재로 읽히기도 했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하고 문학성이 우수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2007년 미주 한인 동포를 중심으로 항의 운동이 펼쳐져 캘리포니아 정부에서는 퇴출됐다.

문제는 여전히 다수 주에서 이 소설을 공교육 필수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인된 주만 콜로라도, 코네티컷, 조지아, 매사추세츠, 네바다,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 등 8개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 인식을 심고, 그들의 학습 선택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며 “아마존에 더해 주, 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추가 청원을 올려 사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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