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인사청문회 제도 바꾸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3 16:41

수정 2021.03.23 17:33

자질보다 신상털기 치중 
여차하면 '가문의 치욕'
장관 기피증은 실화 

인재 배제는 국가적 손실 
윤리는 비공개로 바꾸되
사전검증은 더 깐깐하게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정치인 출신 장관이 부쩍 늘었다. 국회의원 겸직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하는 전통이 있다. /사진=뉴스1화상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정치인 출신 장관이 부쩍 늘었다. 국회의원 겸직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를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하는 전통이 있다.
/사진=뉴스1화상


[파이낸셜뉴스] 인사가 만사(萬事)다. 그런데 인사가 망사(亡事)일 때도 있다. 정권마다 사람 뽑는 걸 힘겨워한다. 장관 기피증까지 생겼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올해로 21년째다. 한국 정치에서 이 제도는 잘 굴러가고 있는 걸까.

기해천수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먼 옛날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신하 기해가 임금에게 자기 후임으로 철천지 원수를 천거했다. 하필 그 사람이 일찍 죽자 이번엔 자기 아들을 천거했다. 임금이 "그 사람은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고 묻자 기해는 "임금께서는 제 후임자로 적당한 사람을 물으셨지 누가 제 아들인지 물으신 게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고? 맞다. 옛날 일이다. 요즘 같으면 어림없다. 다만 기해천수 고사를 굳이 든 것은 인재 등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능력임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21년 된 우리 인사청문회 제도에서 고칠 건 없을까.

이한동 국무총리가 지난 2001년 2월 22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민의정부' 3주년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2000년 6월 사상 첫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총리로 취임했다./사진=fn뉴스
이한동 국무총리가 지난 2001년 2월 22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민의정부' 3주년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2000년 6월 사상 첫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총리로 취임했다./사진=fn뉴스

외환위기 직후에 도입

2000년 김대중정부에서 인사청문회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국회법을 바꾸고 인사청문회법을 새로 만들었다. 이땐 헌법이 정한 23개 공직만 대상으로 삼았다.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 등이 그들이다.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가 첫 타자였다. 2000년 6월 국회는 본회의에서 이한동 임명동의안을 찬성 139, 반대 130표로 통과시켰다. 단 9표차로 아슬아슬했다.

인사청문 제도가 자리를 잡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다. 청문 대상이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세청장 등 권력기관 수장으로 넓어졌다. 2005년엔 장관도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엔 한국은행 총재,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이 추가됐다. 박근혜정부에선 특별감찰관,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이 포함됐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8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을 추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인사청문 대상 공직은 모두 66개에 이른다('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결과: 역대 정부별 비교와 함의'·2021년 3월22일 발간).

자료=입법조사처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결과: 역대 정부별 비교와 함의' 보고서(2021년 3월22일)
자료=입법조사처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결과: 역대 정부별 비교와 함의' 보고서(2021년 3월22일)


뭐가 문제인가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국정을 함께 이끌어 갈 핵심 인력에 대해 국회의 의견을 묻는 절차다. 선진적이고 민주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국회 의견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가 갈수록 잦다.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이런 현상이 심해졌다. 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온다.

김대중부터 문재인까지 5개 정부를 비교해 보자. 입법조사처는 국회가 공직 후보자 임명에 동의하지 않거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비율을 정권별로 조사했다. 김대중정부는 그 비율이 12.5%(16건 중 2건)에 이른다. 노무현정부는 6.2%(81건 중 5건), 이명박정부는 23%(113건 중 26건). 박근혜정부는 14.9%(94건 중 14건), 문재인정부는 28.7%(108건 중 31건·2021년 3월1일 기준)로 집계됐다. 평균은 18.9%(412건 중 78건)다. 이명박·문재인정부가 평균을 웃돈다. 그 중에서도 문 정부가 눈에 띄게 높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국회 인사청문회 주관은 특위와 상임위로 나뉜다. 특위는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놓고 표결이 필요할 때 구성한다. 총리, 대법원장, 헌재소장 등이 대표적이다.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끝이다. 장관 등 다른 공직자는 기존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주관한다. 이땐 본회의 표결이 없고, 대신 상임위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한다. 대통령은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하든 안 하든 장관 등을 임명할 수 있다.

임명 강행은 문 대통령 탓인가

문 정부 들어 임명 강행이 늘었다. 대통령 탓인가. 절반은 그렇다. 문 대통령은 통합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달랐다.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상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뒤엔 더욱 거침이 없다. 그럴수록 야당 국민의힘은 거칠게 저항했다. 그 결과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국회는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그렇지만 죄다 문 대통령 책임이라고 보는 건 무리다. 현 청문회 제도가 가진 구조적인 약점도 있다. 본인과 가족 신상털기, 인신공격에 치중한 나머지 자질 검증은 뒷전이다. 2013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청문회를 지켜보며 (총리나 장관직을)기피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임명 닷새 만에 스스로 사퇴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9월 조국 법무장관 등에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인사청문회 절차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고, 국민통합과 인재 발탁에 큰 어려움이 된다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10월엔 국회에서 박병석 의장을 만나 "좋은 인재를 모시기가 정말 쉽지 않다. 청문회 기피현상이 실제로 있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16일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3자 회동에선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별 진전은 없다. /사진=뉴스1화상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16일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3자 회동에선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으나 이후 별 진전은 없다. /사진=뉴스1화상


정치권 움직임은

민주당 4선 중진 홍영표 의원이 청문회 제도 개선에 적극적이다. 홍 의원은 2019년 가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요즘은 장관을 하라고 하면 다 도망가는 세상이 됐다"며 "문재인정부 들어 '장관 해보시라'고 했는데 27명이 '못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작년 6월에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청문회를 '공직윤리'와 '공직역량' 두 부문으로 나누는 게 골자다. 윤리는 비공개, 역량은 공개다.

작년 11월엔 박병석 국회의장 주선으로 김태년(민주)·주호영(국힘) 원내대표가 만나 국회 차원의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두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TF가 구성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홍영표 개정안도 국회 운영위에 상정됐을 뿐 별 진전이 없다.

"제도 바꾸지 마라" 비판도

청문회를 윤리·역량으로 쪼개는 방안을 두고 벌써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깜깜이 청문회, 여야 야합이란 말도 들린다. 제도를 바꾸려면 먼저 이같은 비판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사전 검증 절차를 깐깐하게 바꾸는 건 필수다. 그래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비공개 청문회 중에 후보자의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논문표절, 세금탈루, 위장전입, 음주운전 의혹이 튀어나오면 여론이 들고 일어날 게 뻔하다.

정략 버려야 길이 보인다

청문회 제도 변경은 마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같다.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그래도 접종하는 게 실익이 크다면 맞아야 한다. 청문회 제도를 바꾸면 일부 부작용이 우려된다. 그래도 실익이 크다면 바꾸는 게 낫다. 최대 실익은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야당인 국힘에 주문한다. 인사청문회는 야당에 요긴한 무기다. 대통령과 여당을 들볶을 수 있다. 하지만 국힘은 언제든 재집권할 수 있는 수권정당임을 잊어선 안 된다. 나라의 장래를 염두에 두고 멀리 보기 바란다.

여당인 민주당에 주문한다. 검증 고삐를 단단히 조여야 청문회를 비공개로 바꿔도 뒤탈이 없다. 청와대 검증 자료를 그대로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바란다. 그래야 검증의 질이 높아진다. 지금은 청와대부터 검증망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대선(내년 3월9일)이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은 새로운 인사청문 제도 아래서 대한민국 일급 인재를 쏙쏙 뽑아서 쓸 수 있길 바란다. 재목이 좋아야 집이 튼튼하다.
일류는 다 빠지고 이류·삼류를 쓰면 결국은 국가가 손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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