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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신냉전시대의 국제통상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3 18:00

수정 2021.03.23 18:00

[서초포럼] 신냉전시대의 국제통상
2021년 3월 18일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미·중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모두발언부터 정면으로 충돌했다. 예정된 시간을 한시간 이상 넘겨 진행된 공개 세션에서 미국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와 국제정세의 안정성에 중국이 위협요인이라고 한 반면 중국은 바이든 정부에 내정간섭 등 마지노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신냉전시대의 서막일까?

시계를 돌려 20년 전인 2001년 9월 17일 스위스 제네바. 마이크 무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중국의 WTO 회원 가입 협상의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다자무역체제의 역사적 순간"이라며 환영했다. 중국의 WTO 가입 작업반이 설치된 지 15년 만에 143번째 회원국 가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중국의 회원 가입으로 국제기구로서 WTO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지고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를 통해 글로벌 경제협력의 버팀목 역할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에스트라공: 가자.

블라디미르: 안돼.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오래 전 관람한 연극'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열 번도 넘게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실망인지 허무인지 모를 감정을 안고 소극장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중국이 WTO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은 중국이 기존의 국제통상질서에 편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마치 이들 주인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신냉전시대의 개막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중국의 WTO 가입 당시의 장밋빛 환상에 대한 미국의 실망과 위기감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의 통상질서에 그대로 편입되는 대신 중국은 지난 20년간 국가자본주의에 기초한 독자적인 방식으로 국제통상 시스템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세계 최대의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게다가 일대일로, 중국제조 2025, 기술굴기 등 중국의 야심찬 정책들이 미국의 이익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문제에 대한 의도적 외면하기를 중단하고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관세전쟁으로 시작해 화웨이에 대한 규제를 포함한 기술패권 경쟁으로 발전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미국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바이든 정부하에서 미·중 패권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탈중국화를 추진하기 위해 동맹과의 연대 전략과 다자주의를 활용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 주석이 일부 국가 중심의 '선택적 다자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온 이유다.

코로나19와 미·중 패권경쟁 심화로 국제통상 환경은 당분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동맹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가 우방국의 이익을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중국을 압박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전략적 판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공급망을 검토하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행정명령은 제조업과 디지털 신기술에 대한 미국의 경쟁력과 안정성 확보에 방점이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통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통상정책도 혁신에 필수적인 집단 역량을 의미하는 산업공유지(industrial commons) 개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새롭게 재편되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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