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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기본소득의 오해와 진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4 18:25

수정 2021.03.24 18:25

[fn광장] 기본소득의 오해와 진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본소득 어젠다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주로 여권의 진보 계열 정치세력이 주장해왔던 기본소득 도입에 더해 국민의힘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 카드를 꺼내 들면서 기본소득은 이제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의 핵심 복지정책 공약으로 자리를 굳혀가는 모양새다.

이제는 웬만한 복지정책에는 모두 '기본'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을 지경이다. 기본자산,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의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도입된 긴급재난지원금도 기본소득으로 포장됐다. 경기도는 재난지원금 공식 명칭을 '재난기본소득'으로 명한 바 있다.
특정 대상을 위한 기본소득 제안도 끊이지 않아 청년을 위해서는 청년기본소득, 농어촌 주민을 위해서는 농어촌주민기본소득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가히 기본소득의 백가쟁명 시대라 할 만하다.

기본소득의 개념은 정부가 모든 시민에게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함으로써 수급자격 심사와 같은 관료적인 간섭이 많은 다른 복지급여를 대체하고, 궁극적으로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정책 논의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기본소득이라고 주장되는 것이 기본소득의 원래 개념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원래 의도하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계 당시 고려했던 특성에의 정합도가 중요하다. 정합도가 떨어지는 정책은 그 정책의 효과성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 단체인 기본소득지구연맹은 기본소득을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등을 포함한 어떤 조건도 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주요 특징은 첫째, 정기적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매월과 같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지 일회성 지급은 아니다. 둘째, 기본소득은 현금 지급이 중요하다. 현금으로 지급돼서 받는 사람이 그 용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음식이나 서비스 같은 현물이나 상품권, 이용권 등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셋째, 기본소득은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것이다. 가령 가구단위 지급은 원칙적으로 기본소득의 개념은 아니다. 넷째, 보편성이다.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다. 다섯째, 무조건 원칙이다. 자산조사나 근로조건 등의 아무 조건 없이 지급해야 한다.

기본소득의 특성에 가까울수록 '진짜' 기본소득이고, 멀수록 '가짜' 기본소득이다. 가짜인 이유는 명칭만 기본소득이라서 원래 추구하는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전 세계적으로도 기본소득으로 불릴 만한 경우는 알래스카에서 1982년부터 시행한 영구기금배당금과 찬성 비율이 23%에 그치면서 2016년에 부결된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안 정도다.

알래스카의 영구기금배당금은 석유 등 천연자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그 주인인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정책이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론되고 있는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방식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형이다.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안이 부결된 이유는 바로 재원 마련책이 없다는 것과 기존의 복지가 축소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복지의 중요한 특성은 한번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불가역성'이다.
정치공약으로서 기본소득이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그 실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먼저 소통돼야 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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