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떤 남자 좋아하나" "노조 가입할텐가" 갑질 면접 여전하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5 17:43

수정 2021.03.25 18:27

두글자 성 쓰는 여성 구직자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쓰지 않나"
면접관 인기투표식 질문하자
'부적절' 지적한 지원자 탈락도
업무 무관한 부당한 질문에도
면접 떨어질까 항의도 못해
면접 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fnDB
면접 과정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fnDB

"OO씨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나? 여기 면접관 중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고른 다음에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보세요"


"입사하면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나? 평소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나?"

취업난으로 구직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면접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다는 피해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나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 등 업무와 관련 없는 민감한 질문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어떻게 생각하나"

25일 구직자 등에 따르면 장이씨(20대·여)는 지난해 말 있었던 중견기업 면접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당시 장이씨는 면접 과정에서 자신을 '장이OO'라고 소개했는데, 한 면접관이 '왜 이력서에 적힌 장씨와 달리 본인을 장이씨라고 표현하느냐'고 질문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장이씨는 "어머니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어머니 성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며 "법적으로 (부모) 양쪽 성이 인정되는 게 아니라서 이력서엔 장씨라고만 썼지만 자기소개할 땐 평소 하는 것처럼 장이OO라고 했는데 계속 공격적으로 질문을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장이씨는 당시 면접관이 자신에게 "두자 성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 아니냐"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 간 남자 동기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해봤느냐" 등의 질문을 지속해 부당하게 느꼈다고 주장했다. 2019년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던 이모씨(29·여)도 부적절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2차 면접에서 남자 면접관 3명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중 한 면접관이 "평소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느냐"며 "면접관 중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골라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라"고 물었다.

이씨는 "지원자들끼리 스터디하는 오픈카톡방에서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이 분야에서 취업할 거라서 대놓고 문제 삼지는 못했다"며 "면접관들이 약간 인기투표 받듯이 농담하며 '또 너냐'는 식으로 웃었는데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업체에 합격해 현재 재직 중인 이씨는 당시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지적한 지원자가 끝내 탈락했다고 전했다.

■"노조 가입 할 건가" 질문도

한 의료기관 사무직에 지원한 이모씨(37) 역시 부당한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씨는 최종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에게 "노조 가입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일을 배우는 게 우선이고 노조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없다"고 둘러댔는데, 다른 면접관이 "노조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 당황했다고 했다. 이씨는 "너무 줏대 없어 보일까봐 노조는 법으로 보장된 것으로 아는데, 노동자들이 병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했었다"면서 "탈락하고 나니 그 질문에서 노조를 싫어한다고 했어야 했나 계속 후회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갑과 을이 명확히 갈리는 면접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크루트가 지난 2018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면접 갑질'에 불쾌감을 표현하거나 질문의 의도를 되물은 경우는 10명 중 2명에 미치지 못했다. 대부분은 '혹시라도 떨어질까 불쾌한 마음을 숨기고 면접에 임했다(48.8%)'거나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렸다'(19.3%)'는 등 소극적 태도를 취했다. 당시 조사에선 면접 중 갑질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75%에 육박했고, 상당수가 △도를 넘는 사적 질문(인맥조사·집안환경·경제상황)(14.2%) △모욕적인 질문(7.4%) △인신공격(6.1%) △반말(6.5%) △막말·폭언(5.1%) △터무니없는 장기자랑(2.5%) △성희롱·성차별 발언(2.3%) 등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면접 갑질은 중소기업(35.2%), 중견기업(25.4%), 대기업(17.3%)을 막론하고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표준면접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기업들에 보급하는 방식으로 문화개선에 나서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면접과정은 표준화돼야 하고,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내용으로만 질문이 이뤄져야 한다. 성별이나 지역, 연령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된다.


다만 강제력이 없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면접문화 개선에 나서기를 기대해야 하는 형편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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