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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이야기’가 2차대전 참고서?···美교실 잠식한 왜곡 소설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9 06:00

수정 2021.03.29 06:13

아마존, 요코이야기 교사용 지침서까지 판매 
“2차 대전 교재로 좋다는 제안서 써보게 하라”
사진=아마존 갈무리
사진=아마존 갈무리
[파이낸셜뉴스] 아마존이 한국인을 성폭행 가해자로 묘사한 소설뿐 아니라 이 책을 제2차 세계대전 교육용으로 쓰는 참고서까지 온라인 판매대에 올려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25일 본지는 관련 기사에서 한국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글로벌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대나무숲 저 멀리서(So Far from the Bamboo Grove)’ 판매 중단 청원을 올렸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 몇몇 주들에서 필수교재로 채택돼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에 이어 유명 출판사가 이 소설 관련 교사용 참고서를 제작·출판하고, 아마존이 그대로 받아 판매하고 있는 사실까지 파악된 것이다.

29일 반크에 따르면, 아마존은 ‘대나무숲 저 멀리서(국내 번역본 제목: 요코이야기) 교사 지침서’라는 제목의 책을 판매하고 있다. 실제 해당 책은 아마존에서 12.89달러(약 1만4600원)에 올라와있다.

이 지침서를 살펴보면 해당 소설을 소개하면서 “요코가 겪은 실화”라고 명시해놓는가 하면, “어떤 면에서 소설 같은가, 소설과 어떤 점이 다른가”라고 적기도 했다.


또 “책 표지의 삽화를 보고 다음 질문에 답하게 하라”면서 ‘이 이야기는 어디서 발생했나, 해당 삽화 속 단서는 상황에 대한 무엇을 보여 주는가’, ‘삽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가’ 등의 질문들을 나열해놨다.

언뜻 중립적 성격의 질문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전면 표지의 그림에는 요코의 가족들이 대나무 숲에서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담겨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들을 피해자처럼 그리면서 전범국인 일본이 2차 대전의 피해국이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그 같은 삽화가 전쟁의 실상을 착색하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뿐 아니라, “이 책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무엇을 배웠나”라며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활용해 역사 선생님에게 이 책이 제2차 세계대전 수업 시간에 활용하기 좋은 책이라는 제안서를 써보라”는 황당한 지침도 쓰여있다.

게다가 이 책은 2007년 초판을 찍은 후 수차례 개정을 거쳐 지난해 또 다시 출간됐다. 십수년 간의 문제제기를 뒤로 하고, 해당 소설을 넘어 그 참고서까지 판매하는 아마존은 역사 왜곡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나무 숲 저 멀리서 교사용 지침서’ 내용 일부 / 사진=반크 제공
‘대나무 숲 저 멀리서 교사용 지침서’ 내용 일부 / 사진=반크 제공

‘대나무 숲 저 멀리서 교사용 지침서’ 내용 일부 / 사진=반크 제공
‘대나무 숲 저 멀리서 교사용 지침서’ 내용 일부 / 사진=반크 제공
“소설 자체도 왜곡된 사실에 기반”
요코이야기는 지난 2005년 국내 번역 출판된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소설로, 11세 일본 소녀 요코가 세계 2차대전 일본의 패망 후 함경북도 청진에서 원산·서울·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살해와 강간 범죄를 목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반크는 이 소설이 왜곡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크는 “이 책은 요코가 함경북도 나남 지역에 날아온 미국 B29(전략폭격기) 공습을 뒤로 하고 한밤중에 기차를 탔다고 묘사했다”며 “하지만 미군은 당시 한반도를 직접 폭격한 사실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요코가 성폭행을 피해 남자처럼 보이려 가슴을 싸매고 서서 소변을 봤다고 서술했지만, 이 역시 신빙성이 없다”며 “일제는 패망 후에도 한동안 한반도에서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다. 되레 해방을 반기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반크가 미구 주 정부와 교육청을 겨냥해 새롭게 올린 캠페인 / 사진=반크 제공
반크가 미구 주 정부와 교육청을 겨냥해 새롭게 올린 캠페인 / 사진=반크 제공
미국 내 수요 겨냥한 일본의 노림수
이 책은 미국 학교에서 6~8학년 언어·사회 부문 추천·필독서로 지정돼 반전(反戰) 교재로 읽히기도 했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묘사하고 문학성이 우수하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 2007년 미주 한인 동포들의 항의 운동 덕에 캘리포니아 정부에서는 퇴출됐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 주에서 이 소설을 공교육 필수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확인된 주만 콜로라도, 코네티컷, 조지아, 매사추세츠, 네바다,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 등 8개다.

박 단장은 “인권·자유·반전의 가치를 갈망하는 미국 내 수요와 일본의 전략이 맞아떨어졌다”며 “미국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인다. 일본은 그것을 노리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그릇된 역사 인식을 심고, 그들의 학습 선택권을 박탈하는 처사”라고도 강조했다.

반크가 지난 4일 올린 책 판매 중단 청원은 1만6000개 넘는 서명을 받았다.
반크가 새롭게 올린 ‘미국 각 주 교육부와 학교들은 요코 이야기를 활용한 수업을 중단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캠페인에는 약 1100명이 힘을 보탠 상태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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