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걸음]가상자산기업들, 소비자 낙제점 면할 때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30 18:00

수정 2021.03.30 18:00

[이구순의 느린걸음]가상자산기업들, 소비자 낙제점 면할 때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정부 신고절차를 거친 뒤 사업하도록 하는 개정 특금법이 시행됐다. 가상자산과 법정화폐를 교환·매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일정 자격요건을 갖춰 정부에 신고해 수리되면 합법 사업의 근거를 갖게 된다.

지난해 특금법이 개정되던 날이 생각난다. 드디어 한국의 법률에 '가상자산'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며 가상자산 업계는 잔칫날이었다. 가상자산 기업이 제도권 금융사업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라며 조금 이른 김칫국도 마셨다.

이내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찬물을 붓기는 했지만 아무러면 어떻겠는가 했다.
산업이 태어났고, 이름을 지었고, 출생신고 할 수 있으면 됐다. '정부 인정'이라는 도장 찍히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사업자등록, 사무실 임대, 은행 대출, 벤처캐피털 투자유치에 쓸 수 있는 업종구분 정도 바란 것이었으니 말이다.

법률 어디에도 사업지원 같은 단어조차 없는 규제투성이이지만 그나마 사업기준이 세워졌으니 제도 측면에서 첫단추는 끼운 셈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부 신고를 마치면 시장에서 사용자에게 인정받는 진짜 어려운 단계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라는 개념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다. 서비스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소비자는 쉽고 편해야 한다. 사용료는 싸야 하지만 싸구려 서비스 만들면 안된다. 내게는 별다른 정보 요구하지 않아야 하지만, 내가 물어보면 언제든 무엇이든 답해줘야 한다.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결국 소비자 요구에 가까이 가는 기업만 살아남는 게 서비스 시장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들, 사실 낙제점이다. 툭하면 서비스 중단되는데 사과하거나 보상하지 않는다. UI는 어려운데 정작 쓸만한 서비스나 정보는 없다. 거짓공시 가려낼 능력은 없으면서 코인들 잔뜩 상장해 사용자 현혹만 한다. 불만사항 하나 물어보면 자기들 문제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수수료는 꼬박 챙긴다. 수수료는 비싸 투자이익보다 수수료가 많은, 배보다 큰 배꼽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 가상자산 기업들 이래저래 어려웠다. 산업 초기인 데다 정부가 투기판이라고 미운털 박아놓고 투자도 채용도 어렵게 만들었다. 그 어려움이 안쓰러워 언론도 소비자 불만은 잠깐 뒤로 미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오랜만에 비트코인도 불장이어서 시장이 급속히 커졌고,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가상자산 제도를 다듬고 있어 투자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상자산 사업자들, 어제처럼 사업하면 안된다.
개정 특금법으로 출생신고를 마친 가상자산 사업자라면 이제 그에 맞는 옷을 입었으면 한다. 극단의 이기심을 가진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 탓, 제도 탓 그만하고 서비스 경쟁에 나설 때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블록체인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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